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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직업, 디자이너 2
Design |
09/12/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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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설프게 아이돌의 춤을 흉내내고 패러디 하는 것을 보면서 오는 씁쓸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왜 유명디자이너를 운운하는 자신에 투영되는 것일까?
나아가 어떤 기준으로 디자인 우상을 만들게 된 것일까?
매력적인 디자이너는 수없이 많다. 자신이 느끼는 ‘매력’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매체에 보도되고, 어디서 수상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쇼 맨쉽이 뛰어나서 톡톡 튀는 등 다양한 형태로 디자이너는 유명세를 띄게 된다. 물론 날카로운 비평이나 뛰어난 디자인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디자이너도 최근 눈에 많이 띈다. 그들 모두 디자이너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예전 어떤 친구가 ‘마야 린’을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녀의 작품과 사상, 그녀의 일상, 부모님, 인종, 자라온 과정 등 그녀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그녀의 작품들을 들쑤셨다. 하지만 결국은 이미 알려진 그녀의 겉모습을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회에 끼친 영향이나 비평은 별로 찾기 힘들었다. 이런 것들을 언급하기가 두렵기도 했고, 조금 귀찮기도 했고 나아가 각기 다른 주관적 느낌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빅터파파넥’이라는 디자이너에 푹 빠져 산 적이 있다. 그의 책을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심지어 그의 주요 서적을 요약까지 해 보았다. 앞에 열거한 내용도 빠짐없이 살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알고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함에 한계를 느꼈고, 갈수록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앵무새만이 되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앞의 ‘마야 린’의 경우의 한계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 수준에서 오는 주관적 판단은 결국 많은 제약에 부딪치게 되었고 결국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작가를 알아가는 과정에는 이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 얽힌 한 일화에 따르면 한 학자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던 도중 수레바퀴가 고장 난다. 그래서 주변의 수레바퀴 수선공을 데려와 수리를 맡긴다. 수레를 고칠 때 그 학자는 수레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수선공이 그 책을 가리키며 그 책은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학자는 화가 나 이 책이 쓰레기인 적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그 수레공에게 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수선공이 이렇게 말한다.
“제 30년 넘게 수레바퀴를 고쳐 와서 수레바퀴 수리에는 어느 경지에 올랐습니다. 이 직업이 돈도 잘 벌고 유용하여 내 기술을 아들에게 전수해 주려 하는데 기술적인 많은 것들은 전수해 줄 수 있지만 정말 핵심이 되는 기술은 어떤 방법으로도 전수 할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 책이 누가 쓴 책인지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책을 쓴 사람도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핵심은 담지 못했음에 분명합니다.”
그렇다.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디자이너를 알고 그것을 선호하고 답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그가 작업을 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담으며 작업했는지 안다는 것 자체는 무리다.
종종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하다가 갑자기 지겹게 느껴지거나 혹은 그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크게 실망하기도 한다.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서 그런 경우도 있고, 다른 디자이너와 비교하게 되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비교 대상에서 우위에 있던 디자이너도 언젠가 마찬가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존의 편견이나 답습을 통해 오는 디자인의 매력은 그 한계를 가지게 된다. 가령 그것이 정말 훌륭한 디자인일 경우에도 내 자신의 한계로 인해 그 가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디자인을 피상적인 매력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 디자이너의 깊이조차 헤아리지 않은 채 주변의 시선에 내 눈높이를 맞추고 그 디자인 혹은 디자이너를 취향에 따라 좋아하게 된다. ‘취향’은 디자인을 직업으로 가진 자의 디자인 자세로서 적합하지 않은 단어이다. 또한 매력적인 디자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
‘취향’은 디자인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중 하나이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는 프로세스에 적합하지 않다. 디자이너에게 ‘취향’이란 단어는 가장 경계해야 할 단어이다. 취향을 기준으로 어떤 디자이너를 감히 입에 올린다면 그것 자체가 그 디자이너에 대해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칫 디자이너가 맹목적으로 그의 디자인을 따르고, 피상적으로 답습하게 하여 디자이너 자신의 본질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축적되면 디자이너의 생명인 창조성이 파괴되고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게 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디자이너가 많아진다면 결국 디자이너라는 직종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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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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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0 09:14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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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다른 곳에서는 고쳤는데, 정작 여기는 신경못썼네요.
고치겠습니다. 맞춤법 신경쓰는게 참 어려워요. ㅋ
지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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