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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는 눈
Life |
10/05/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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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어느 가을날 이었다.
나는 태양광에 관련한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때 수업을 진행하시던 분은 과학 지식인인 이필렬 박사였다.
당시 사회가 황우석 박사의 윤리문제, 논문위조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그날 황우석 박사 이야기가 나왔다.
황우석 사태가 터졌을 당시 모든 국민과 사회는 황우석 박사를 옹호했다.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패기 넘친 나는 그날 수업시간에 황우석 박사의 문제를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에게 대들었다.
나 : 황우석 박사의 윤리적인 문제와 논문위조의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이번 문제제기와 과정은 이 사회에 있어 결코 이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고 안정적인 직업만을 쫓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황우석 신화는 이공계의 활성화와 도전정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황우석 문제의 언론의 보도와 도를 넘어 이슈화되는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필렬 박사 : 그건 잘못된 생각이네, 과학에 있어 진정한 연구를 팽개치고 다른 것으로 과학의 성과를 부풀리는 관행을 깨는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네.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과학에 큰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네.
(대답이 내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의도였다고 기억한다.)
5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선뜩 이필렬 박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수업의 분위기상 또 딱히 반박할 논리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 알 것도 같다.
나는 사회의 문제를 보는 시야가 너무 좁았기에 판단하는 통찰력이 무척 부족했다.
스스로 나 자신이 이 사회의 기득권적인 부조리에 매몰되어
미디어가 반복하는 메세지에 쇠뇌되어 있었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상실되어 있었다.
나는 그 5년전의 짧은 시간을 잊지 못한다.
당시에는 나의 논리가 짧았다고 자책했지만 지금은 나의 어리석은 궤변과 좁디좁은 시야를 자책한다.
큰 것으로는 작은 것이든 큰 것이는 한꺼번에 해결하지 못한다.
핵심적인 작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서 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본질과 해결 방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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