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글을 읽을 때는 대화에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읽는다.
글을 읽을 때는 구두 문화 같은 친밀한 참여적 특징을 살릴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혼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글을 읽을 때는 성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글을 읽는다는 것은
혼자서 대화의 의미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월터 옹 교수는 에릭 해블록의 명저 '플라톤 서문_preface to Plato'의
분석에 동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쓴다는 것은 아는 쪽과 알려지는 쪽을 분리하여 더욱더 분명히 자신을 성찰하게 만들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신과 완전히 구별되는 외부의 객관적 세계뿐 아니라
객관적 세계와 대립되는 내면의 자아에 대해서도 영혼을 개방하는 행위이다."
<공감의 시대_제레미 리프킨 2부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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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읽고 쓰는 행위이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공생의 관계이다. 읽는 행위는 쓰는 행위를 불러오고
쓰는 행위는 읽기 행위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필연적 관계이다.
이것은 리프킨이 말한 대로 일종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읽기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읽고 그것을 나에 빗대어 나를 인식한다.
그리고 나를 인식하는 과정속에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에 대한
개인적 역사의 개념을 가지게 된다.
즉, 읽는 행위는 개인의 역사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이다.
그리고 쓰는 행위는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추상적인 인식을 하게 되고 자아를 찾는 과정을 겪는다.
인문학은 이런 읽고 쓰는 반복적 행위이다.
우리는 흔히 인문학을 너무 어렵게 인식해 문학과 철학, 역사를 읽는 행위에 국한시키고 있다.
하지만, 읽는 행위만으로는 인문학적 성찰이 나약하다.
기록, 쓰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성찰을 다시 꺼내 놓고 스스로 평가할수 있으며
나아가 타인에게 이것을 보여주어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만약,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큰 틀에서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문적 내면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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