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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의 관계론(신영복)
Life | 09/04/26 19:44
일껏 붓을 가누어 조신해 그은 획이 그만 비뚤어버린 때 저는 우선 그 부근의 다른 획의 위치나 모양을 바꾸어서 그 실패를 구하려 합니다.
이것은 물론 지우거나 개칠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획의 성패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 속에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획이 다른 획을 만나지 않고 어찌 제 혼자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획도 흡사 사람과 같아서 독존하지 못하는 '반쪽'인듯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자'가 잘못된 때는 그 다음 자 또는 다음다음자로써 그 결함을 보상하려고 합니다. 또 한 '행'의 잘못은 다른 행의 배려로써, 한 '연'의 실수는 다른 연의 구성으로써 감싸려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잘못과 실수의 누적으로 이루어진, 실패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와 노력들이 점철된, 그러기에 더 애착이 가는, 한 폭의 글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얻은 한폭의 글은, 획, 자, 행, 연 들이 대소, 강약, 태세, 지속, 농담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며 간신히 이룩한 성취입니다. 그중 한 자, 한 획이라도 그 생김생김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와르르 얼개가 전부 무너질 뻔한, 심지어 낙관까지도 전체 속에 융화되어 균형에 한 몫 참여하고 있을 정도의, 그 피가 통할 듯 농밀한 '상호연계'와 '통일' 속에서 이윽고 묵과 여백. 흑과 백이 이루는 대립과 조화, 그 '대립과 조화' 그것의 통일이 창출해 내는 드높은 '질'이 가능할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서도의 관계론, 101페이지 /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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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께서 아버님께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다.
신영복선생은 1977년 당시 글씨를 배우고 계셨다.
내용에서 보듯 신영복 선생은 글씨를 쓰면서 한 획이 삐뚤어지면 그와 관계된 획의 모양과 위치를 바꾸어 그 실패를 구하고 균형을 잡겠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이어진 글자와 글을 써나감에 모든 요소를 그 삐뚤어진 균형에 맞추어 새로운 균형을 잡아간다는 말씀이다.
내용을 인간에게 빗대면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뭔가 잘못되면 이에 걸맞는 사람이 나타나 우리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삶이 삐뚤어지면 항상 스스로를 바로 잡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시 사회의 기준에 맞게 바로잡기보다는 스스로의 삐뚤어진 기준에 맞추어 새로운 균형을 맞추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자의 '획'도 사람처럼 '관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내가 바른삶, 바른관계에서 빗겨나갔다면 분명 신영복 선생님의 비뚤어진 '획'에 걸맞는 비뚤어진 누군가 나타나 균형을 맞추어 주리라...


새로운 창조를 위해 삐뚤어진 획을 감추지 않고 흐름을 인정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져 인용해 보았다. 이런 신영복 선생의 표현은 우리의 삶이 반드시 바른 관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관계, 현실도 '걸맞는 관계'로 포용하여 새로움을 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창의적 삶의 자세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실상 획의 성패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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