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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memo |
11/08/2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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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합리적인 것은 많은 불합리의 원인이 된다.
(조지 리치_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것은 '진정성'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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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엘레스는 '자연은 본래 합목적적인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서
자연의 목적정 즉 존재의 목적성을 강조했다.
근대의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이성관은 여기에서 기인한다고도 할수 있다.
그런데 존재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목적이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결국 모든 것이 목적을 가진다면 그 유일한 목적은 결국 '존재'가 아닐까
굳이 목적을 갖는다는 말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존재라고 하면 될 것을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할 만한 것은
물론 그분들의 인류의 근본적 세계관을 바꾼 큰 업적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합리와 목적의 아버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논리적인 한 인간일 뿐이다.
어디에나 있는 다만 많이 알려진 한명의 존재일 뿐이다.
근본적 세계관의 변화에 이 두분만이 아닌 수많은 숨은 인재들이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분들의 논리가 일종의 절대적 로고스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인용하고 그 근거로 어떤 생각을 전개하고
논리적 근거를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표면적인 것이며
허무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결국 상대와 나를 타자화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타자화 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를 평등한 선에서 다시 동질화 시켜봄으로서,
즉 수많은 존재들의 차이성와 동질감을 끊임 없이 대입시킴으로서
우리는 모든 사상과 생각들을 열어놓고 다양한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어쩔수 없는 주류와 비주류(타자)의 관계는 인정해야 하지만
주류와 비주류는 늘 쉽게 바뀔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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