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다르지 않다.
가르친다고 말을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스스로가 배워가는 과정이다. 배우는 사람은 자신을 배움으로 이끌면서 이미 스스로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와 배우는 사람은 서로 소통하면서 각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이를 표현한다. 궁금함을 던지고 이에 대한 각자의 주관적 관점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옳고 그름은 없다. 각자가 서로의 관점에서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서로의 관계 속에서 공통의 관점이 만들어진다. 배움은 투쟁이 아니라 공감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구분보다는 서로의 소통이 중요하다. 가르치는 사람이 정리 한답시고 말을 하지만, 이는 스스로가 깨우치고 정리하는 과정이며, 배우는 사람도 이미 스스로를 정리하고 있다.
다만, 가르치는 사람은 소리가 나지만, 배우는 사람은 소리 없이 진행된다는 점만이 다르다. 배움의 장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고요하다. 오로지 내면의 시끄러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가르치는 사람은 교사라 불리고, 배우는 사람은 학생으로 불린다. 또 가르치는 사람은 돈을 받고, 배우는 사람은 돈을 낸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미 가르친다는 것이 곳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 곧 가르치는 것인데 어째서 이처럼 불합리한 상황이 설정되었는가?
같이 배우고 같이 공감하며 나아감에 있어 돈의 개입으로 인해 상하구분이 되니 자연스레 권위가 생기고 이는 배움의 소통에 장애가 된다. 배움의 장은 전쟁터에서 처럼 누군가가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 소리치는 것이 아니고 또 비 오는 날 걱정스런 눈빛으로 우산을 건네주는 것도 아니다. 서로 우산을 함께 쓰고 나아가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과 배우는 것은 이끌어줌이 아니고 동정도 아니다. 서로에 대한 공감이다.
그렇기에 배움의 장에서는 돈이든 아니 그 무엇이든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서로가 만났다는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것이고, 서로가 공감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필자의 선생님은 가르치러 가는 나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감동을 줄 것을, 또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가르침을 받는 자세를 강조하셨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자료를 정리하고, 말의 순서를 만들고, 질문에 대비하고, 나만의 논리를 만들었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배움의 장을 마치 전쟁터로 여겼던 것이다. 온갖 공격용 무기를 만들고, 완벽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치밀한 전략을 짜는 자세는 공감의 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좋은 배움의 우산 속에서 경험을 하고 있는 지금, 조금은 알듯 말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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