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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이론'을 읽고(독후감)
Book | 09/07/04 00:45





사실 제목이 좀 거창하다. 이 책은 디자인 사상의 흐름에 있어 의미 있는 디자이너들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사상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좀 단층적인 부분이 없지 않다. 짧은 디자이너들의 글을 가지고 시대의 디자인적 분위기나 그 디자이너의 의도와 의지를 파악하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짧은 글들의 연속적인 배열로 인해 복잡한 현대 디자인의 흐름을 요약했다는 점에서 분명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리고 흐름을 나열함에 있어 저자의 해석이 달린 글이 아닌 디자이너들의 글을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서 흐름을 잡았다는 점도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에 읽었던 디자인 번역서와 달리 이 책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되었고 그 문체 또한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건 번역자의 세심한 배려라 생각한다.


책의 내용상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사에서 보는 주요 인물의 선택에 있어 내가 읽고 싶었던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윌리엄 모리스나 페터베렌스, 무테지우스 같은 디자이너들의 에세이가 ‘분야의 생성’ 챕터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 그로피우스, 빅터파파넥의 에세이가 빠진 것도 이 책의 흐름상 조금 아쉬운 점이다. 물론 에세이의 선택에 있어 ‘엘런 럽튼’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 내가 모르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으리라. 그런 점에서 책의 서문이나 마지막부분에 디자이너와 에세이 선정 기준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독전감에서도 언급했듯이 디자인 역사를 읽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디자인의 역사는 고작 100년 남짓으로 상당히 짧다. 아니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나온 것은 더욱 짧을 것이다. 이 짤막한 역사를 조망하는 서적이나 정보가 넘쳐나고 우리는 이것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읽고 또 읽는다. 똑같은 현상을 놓고 서로 다른 약간의 시각차를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의 다양성 측면에서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지만 정보 선택을 함에 있어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주체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정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관점에서 100년의 디자인의 역사는 연속된 아방가르드의 역사로 읽힌다. 무언가 생기고 유행하고 반박하고, 또 반박은 새로운 유행을 낳고 새로운 반박을 낳는다. 이 과정이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반복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드미트리 시겔이 ‘이 시대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디에 있는가?’를 반문했듯이 지금 현대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의 또 다른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이미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또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자인 사회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그린디자인’도 이런 측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현대 디자인은 병렬적으로 잘게 나누어져 짧게 반복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럼, 나는 ‘드미트리 시겔’의 질문에 어떤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디자인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 질문은 디자인의 역사를 포괄하는 공신력 있는 대답이 아닌 ‘현재 이 시대에서 디자인이 무엇인가?’ ‘현재 이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 디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당장 이 질문에 대답할수는 없다. 하지만 고민거리를 제공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질문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의 역사를 크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했다. 첨언을 하면...


태초에 용어는 달랐지만 디자인은 있었다. 사람은 도구를 만들었고, 적당한 도구는 널리 퍼져 발전을 거듭했다. 즉,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 디자인은 항상 곁에 있었다. 이것은 과거 공예라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16세기 르네상스 맞이하며 오랜시간 유지해오던 집단체제의 공고한 벽이 깨졌다. 짓눌려있던 개인의 각성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 이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사상이 고개를 내민다. 그러면서 공공예술의 세계가 개인예술의 세계로 전환된다. 그리고 개인화된 예술은 지금까지 발전을 거듭한다.


시간이 흘러 지나치게 개인주의(그것도 특정 계층에서)에 치우쳤던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시 되면서 18세기 서양에 공리주의적 사상이 나타난다. 이는 시민사회개혁과 체제개혁으로 이어진다. 이 분위기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일어났던 엄청난 사회체제의 변화와 인식의 변화에서 볼 수 있다. 이때 지나치게 개인화되어 있던 예술세계도 급격히 변화했다. 다시 공공을 중요시 하는 예술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다시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 체제가 공고해 지고 사회는 자본, 금융에 지배된다. 예술도 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개인의 자유에 입각한 자본민주주의에서 개인의 부가 축적되고 부에 의한 계급화가 형성되면서 다시 개인의 입김이 강해지고 20세기 초의 공공의 예술이 개인의 예술로 전환되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이 진행되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각성하고 반박하여 디자인의 의미가 형성되었던 시절의 예술, 공공예술의 회기을 요구하고 있다. 즉, 지금의 사회는 예술의 역사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하고 있으면 예술과 디자인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작가주의와 공공성의 대립 양상이 또 다시 표면화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언급하지만, 실제는 개인과 공공의 차이이다. 예술의 역사에서 이 대립은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예술은 엄청난 사회의 개혁에 따라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즉 공공의 예술과 개인의 예술이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서로 전환되면서 예술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다. 지금 그 변화의 가운데 우리가 있다. 여기서 나는 어떤 방향을 지지해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개인예술인가, 공공예술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디자인에 대한 입장에서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할지 방향과 생각의 화두를 부여 받았다.
물론 책의 마지막 챕터(미래의 설계)에서 몇 가지의 흐름과 방향을 소개했다. 소개한 프레임이 전부가 아니기에 굳이 종속될 필요는 없지만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제시한 디자인의 흐름과 질문은 또 다른 책을 읽어갈때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디자인 사상의 흐름을 보여주기 보다는 약간은 급박하게 사상의 흐름을 진행시키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진 못했다. 중간 중간에 심호흡을 하고 내용을 다시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때론 욱!하며 반발심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상을 던져놓고 뒤에 나오는 챕터에서 충분히 반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엮는 암스트롱의 의도일까?



어쨌거나 좋은 책을 기획한 출판사와 번역에 힘쓴 이지원 선생의 수고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책은 읽는 것보다 고르는 것이 더 힘들다. 서울에 갇혀 세상의 단면만을 보며 사는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좋은 책을 골라준 그들에게 더욱 고마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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