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회주의의 실현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유롭고 충만한 생활이며, 삶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에너지를 즐겁게 사용하는 것이고, 나아가 에너지를
발산한 뒤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휴식을 누리는 것이다.
......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미래 사회의 이상은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적 의사의 자유와 향유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명은 그것을 무시하고 있다.
사랑, 즐거움, 배고픔, 수면에 대해 스스로 조금이라도 타락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나쁜 동물이고 처참한 인간이다.
좋은 음식물과 주거는 육체적인 건강을 가져다주는 기본이다.
또한 인간이 소박한 생활을 즐겁게 느끼고, 손발을 움직이며 체력을 사용하는 것을 즐기고,
태양과 바람과 빗속에서 노닐며, 동물로서의 적절한 육체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기쁨을 느끼게 하는 기본이다.
만일 권위로부터 자유가, 개개인이 언제나 모든 상태에서
그가 생각한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사회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또한 이는 사회주의가 사회의 최고 표현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때
'다른 사람이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권리에 당신이 간섭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인다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권위의 행사가 필요하게 된다.
(월리엄 모리스 평전, 박홍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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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의 아나키즘은 정치적 접근 보다는 각 인격과 교양을 갖춘
인간 스스로의 순수함에 더 의지한다.
자유와 평등은 배반적인 개념이다. 자유는 평등을 억압하고 평등은 자유를 억압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주의는 이 두 개념의 적절한 균형이다.
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함에 있어서도 어떤 개념이 앞서냐에 따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갈린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윌리엄 모리스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우선한다.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적 편견'보다는 '정치사회적 상상'에 훨씬 더 매력을 느낀다.
월리엄 모리스의 사회적 이상향은 그의 소설 '에코토피아 뉴스'에 잘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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