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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교육, 무엇이 진실인가
Design | 08/03/30 18:08
최근 EBS에서 외국 대학교수들의 교수법에 대한 프로를 보았다. 그냥 채널을 돌리다 잠깐 보았지만 그 여운은 길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것일까? 방송에서 예를 드는 교수들은 모두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자신이 가르쳐야 할 내용을 줄이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수업의 목적이 일방적인 내용의 전달이 아닌 학생과 선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쌍방소통에 의해 이루어지게 유도함으로서 학생들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오래전 진로로 심각한 고민을 할 때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사회에 자리 잡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회에 자리잡기까지는 교육보다는 운에 많이 좌우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자리잡은 내 직업는 지금까지 받은 교육에 의한 전문지식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학교에서 직장까지 오는 과정은 교육의 역할보다는 나의 노력과 사회적 운에 더 많이 좌우되었다.


가끔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현실교육이 원래 이런거니까 입닥치고 열심이나 해!”
“니가 힘들었던 것은 니가 노력안한 탓이지 교육이 뭐가 문제냐!”
이렇게 치부하기에는 좀 슬프단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현대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교육은 사실 해석위주의 교육이다. 공대를 다닐시절 거의 모든 수업은 일방적인 이론의 습득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실제 실험실습에 의한 습득이 아닌 계산기와 공식을 이용하거나 심지어 풀이과정을 송두리째 외워야만 하는 암기식 습득과정이었다.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꾼 뒤 한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수업이 공대보다는 훨씬 자유로웠고 실습의 과정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수업이었다. 그렇기에 디자인의 창의력 교육이 무척 신선했다. 아무튼 디자인 전공 시절 많은 것을 느끼고 스스로 배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디자인을 배웠던 시절을 돌아볼 때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졸업 후 사회에서의 지난 몇 년 동안 디자인에 대한 나의 개념을 다시 세워야 했다. 아니 그전에는 전혀 디자인 개념이 없었다. 그저 종이와 펜, 컴퓨터 등을 이용해 디자인하고 남들이 만든 형태에 감동하여 이를 따라하기 바뻤다. 그동한 했던 시행착오와 전문적인 그래픽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은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약간의 전문성을 가졌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디자이너인 나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나만의 디자인철학?‘ 없었다. ’나만의 디자인 목표와 방법?‘ 없었다. 사실 그런 걸 생각할 시도도 없었다. 나는 디자인에 있어 그저 조형적인 측면만을 배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조형적인 측면을 제대로 배웠을까? 아니다. 교수들이 정해놓은 조형적틀과 수많은 디자인 전문서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정답인양 항상 그들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교수들과 디자인전문서적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먼저 그들의 선행학습을 쫓고 자기 것을 발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또한 그런 과정을 통해 나의 전문성을 높이고 디자인 눈높이를 높일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런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들이 실제적으로 상대하는 클라이언트들과는 많은 이질적인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점이다. 디자이너들은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의뢰를 받고 이를 디자인해 가는 과정속에서 클라이언트와 많은 갈등을 빚는다. 이것은 눈높이의 갈등이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눈높이 차이가 너무 커 서로가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한다. 그렇기에 결국 둘 중 하나는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을 생산한다. 예전엔 디자이너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을 모르는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의 의견을 말살하는 현실을 하소연하곤 했다. 클라이언트의 눈높이가 낮아서 어쩔수 없다고 치부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모두 옳을까? 결코 아니다. 최근에 나는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세를 더욱 비판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는 문제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문제를 디자인으로 풀기위해 디자이너에게 의뢰한 것이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그것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그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학교에서 디자이너들끼리 디자인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디자인의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다.
즉 디자인교육에 디자이너의 자세와 철학, 사회적응 교육이 빠져 있는 것이다. 결국 디자인교육은 디자이너들끼리 모아놓고 그들만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들만의 세계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함으로서 정작 우리가 소통해야할 사람들과의 단절을 야기시켰다. 이것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디자인에 빠지도록 유도하였으며 진정으로 디자인이 필요한 클라이언트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디자인철학의 부재로 인해 디자인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 마져 흐려졌다. 디자인교육은 그저 새롭거나 예쁘면 그만인 상태의 반쪽짜리 디자이너를 양성하고 있었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 옳고 그름만이 있을 뿐이다’
빅터파파넥이 한 말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어떤 기준에서 올까? 이것은 누가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류의 대화는 디자인 교육에 반드시 필요하다. 디자인교육의 방향은 반드시 이런 류의 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실습위주의 바우하우스식 교육도 중요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의 의미와 역할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디자인과 분명 다르다. 그 형태와 디자인방법뿐 아니라 철학과 사회적 분위기도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바우하우스식 실습위주의 디자인교육에만 몰두 할뿐 실질적인 디자인변화에 따른 디자이너들의 자세에 대한 디자인교육은 방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만의 디자인철학을 찾는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확고한 디자인철학을 가지신 윤호섭 선생님을 만나 그분으로부터 디자인을 다시 생각할 동력을 얻었고 많은 것을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디자인철학을 습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이런 과정은 순전히 내가 의지가 있었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디자인교육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엊그제 언론재단에서 신문편집중급과정 디자인강의를 하였다. 서두에 꺼낸 말은 “우리는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작 어느 누구도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는다”이다.
이것은 디자인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뿐 아니라 디자이너들 조차도 마찬가지다. 정시화 선생님께서 디자인론 강의를 통해 디자인역사와 수많은 디자인흐름, 정의, 과정 등을 들었던 것이 전부다. 나의 수년의 디자인 인생에서 디자인에 근본적인 이야기를 들은 수업이 딱 이거 하나다. 내 디자인 인생에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선생님이 딱 두분이다. 이것이 디자인교육의 현실이다. 이 두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림 위주의 디자인서적들을 뒤적이며 적당한 형태를 찾고 베끼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게 될지 모른다. 이미 언론재단 강사로서 두차례 강의를 했지만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첫 강의는 내용이 부실했고, 두 번째 강의는 시간에 비해 내용이 많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강의가 끝나고 받은 질문은 강의시간에 했던 내용이었다. (-.-;) 지식의 전달에 급급해 이해를 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강의준비를 하면서 그냥 일방적인 전달식의 강의내용을 준비했다. 이것은 내가 그렇게 받아왔고 그렇게 공부해왔기 때문이다.
현실을 즉시하고 현실에 맞추는 교육, 대화하고 참여함으로서 스스로의 능력과 생각을 개발하는 교육, 학생의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선생님, 다양한 경험을 전달하고 이를 학생들이 직간접으로 체험함으로서 사회에 잘 적응하여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육, 토론과 토의로서 서로간의 의견을 경청하고 협력하여 개별적인 발전과 집단의 발전을 동시에 이끌 수 있는 교육 등이 절실하다. 이런 방식의 교육은 우리가 늘상 언급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부실한 교육의 현실이다. 세상에 정보는 넘쳐난다. 또한 지식도 넘쳐난다. 그것을 받는 통로도 넘쳐난다. 하지만 학생들은 어떤 것이 유용한 정보와 지식인 줄 모른다. 또한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에서 진정한 감동을 끌어올리지를 못한다. 이것이 앞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할 교사들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영어를 더 배우고 타이포그래픽을 더 배우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더 배우고 이런 것은 사실 교육을 사회에 반영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생각을 하고 느끼는 과정, 서로를 인정하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 교육에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닐까....


(2008년 3월30일 언론재단 강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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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ㅎ 08/04/01 14:06 R X
이래저래 공감가게 잘 써놨네. 그치. 그렇치. 그 문제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하고 있는건데...

근데...그건 그렇고 지금 강의 했다고 자랑하는 글아냐?
여경갤러거 08/04/01 14:24 X
홈페이지 깔끔하게 잘 꾸며놨네... 나도 시간좀 있음 하고 싶은데 이거 할때마다 드림위버를 공부해야 하니 귀찮다. ㅋ 나도 이집트 갔다온거 너처럼 웹으로 구성하고 싶은데...


예리한놈, 그래 강의했다고 자랑질 하는거다. ㅋ
아주 가끔 하는거라 후기로 되새김질 하는 것이기도 하고,
하여간 요즘 이래저래 현대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불만이 많아...
불만이 많아 질수록 고쳐야 된단 생각도 많고...

여튼 얼른 와라 최성원이 디자인회사 만들자고 보챈다. ㅋ
이지원 08/04/03 22:47 R X
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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