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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디자인 딜레마
Design | 08/05/08 16:52
밤에 잠을 청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골몰하게 된다. 최근에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는 나만의 포트폴리오의 부재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디자인을 안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디자이너가 주어진 일을 완수하여 나의 작업물을 포트폴리오화 시키는 것이 순리라고 할 때 나는 내게 주어진 일들을 포트폴리오화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자초한바가 크다. 그린디자인에 빠져들고 이를 이해하기 시작한 언제가 부터 나의 디자인철학에 디자인이 없는 디자인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즉 가장 적합한 형태와 정보의 전달을 화두로 잡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상당히 축소시켰다. 어떨 땐 그냥 손을 대지 않은 그 자체가 더 훌륭한 디자인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디자인은 개인의 독단이 아닌 목적을 위한 다양한 합의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면서 결국 나는 개인적 디자인 욕구를 자제하게 되었고 포트폴리오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선생님과 주변의 권유로 몇 번의 특강을 진행했다. 그 주제가 그린디자인이기에 자연스럽게 나의 디자인철학이 반영된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 몇몇은 “그렇담 디자인을 하지 말라는 이야긴가?”라는 의문의 표정을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난 디자인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진정 디자인이 필요한 곳에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러면서 내 말의 모순을 포장한다.
하지만 역시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딜레마는 나의 말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인 듯 싶다. 현실 디자인계는 디자이너가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디자인의 자존심을 팔거나 디자이너로서 욕심을 부려야만 살아남게 되는 디자인 현실인 것이다. 이것은 누구를 탓할 수도 탓한다고 달라질 수도 없는 현실 그 자체다. 그리고 나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그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노먼포터도 ‘디자이너란 무엇인가’에서 빅터파파넥의 이런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그린디자인에 공감하고 있지만 그것을 현실화 시키는 작업이 쉽지 않다. 당장 디자이너로서 일을 상당부분 축소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축소시킨 공간은 디자이너가 확장된 역할로 나아가야함을 말한다. 하지만 그 역할을 확장함에는 상당한 벽에 부딪치는 것이 또 현실이다. 극도로 세분화된 현대 사회는 자신의 역할을 순순히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접근만이 그 역할의 확대를 가능하게 할 뿐이다. 그 접근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야만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이 속도에 지쳐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현재 나는 딱히 포트폴리오를 제시할만한 것이 없다. 신문밥을 먹은 지 5년차 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걸 했소”라고 말하며 떡하니 보여줄 것이 없다. 특히 신문의 경우 이미 스스로 내 역할을 그렇게 잡았고,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놀았던 것은 아니다. 신문편집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글컷의 시스템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제호의 에서 튀지 않을 정도의 조형성 회복, 서체와 서식, 사진와 타이포, 제목과 본문과의 관계, 선과 면의 쓰임 등 전혀 디자인개념이 없는 신문편집에 디자인개념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입사 전, 입사2년, 지금의 우리 신문의 편집은 한눈에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음을 느끼지만 그 과정속에는 아무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뚜렷한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입사초기부터 신문개편에 참여했던 난 주변 선배들에게 나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 받았지만 난 그 변화의 속도를 늦추려고 노력했다. 독자에게 혼란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기본적 디자인신념 때문이다. 익숙함은 디자인에 있어서 반드시 간과할 수 없는 강력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에서 독자는 위대한 포장(디자인)을 원하기 보다는 보기에 편안한 정보(편집)를 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에 의한 디자인의 변화가 아닌 모두의 노력과 생각을 반영한 결과물을 지향했기에 결국은 나만의 포트폴리오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걸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한때 나는 주변에 포트폴리오를 잃었지만 신뢰를 얻었다고 자부하며 다녔다. 하지만 실제로는 포트폴리오가 없는 디자이너에게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신뢰의 끈으로 이어져 있을 수 있지만 새로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포트폴리오로 어느 정도 신뢰의 폭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포트폴리오는 디자이너에게 있어 신뢰의 수단으로 상당히 중요하다.


최근 내가 빠진 딜레마가 이것이다. 결과물로 말하지 않는 디자이너는 공염불일 따름이다. 그 공염불을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디자인은 앞으로도 포트폴리오가 나오지 못할 공산이 크니... 난 어찌해야 할꼬...


결자해지, 문제를 일으킨 자가 나니 결국 이것도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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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ysun 08/06/11 15:15 R X
정말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네.
여경이는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 나의 답답한 마음을 대신 써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였어.^^
잘 읽었음^^
여경갤러거 08/06/11 16:38 X
허미~ 오랜만이야... 따분한 글도 읽어주고 고마워~ ㅋ
잘 지내고 있지? 잘 지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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