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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Life | 09/01/04 19:09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디자이너의 최대 강점은 새로운 사고를 할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혹은 주어질 과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그것의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그 창의적인 능력이 지나치게 자신을 지향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이런 훌륭한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가 단순히 디자인에만 몰두하는 것은 안타까운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디자인의 개념이 이미 전통디자인의 개념을 넘어 디자인의 행위에만 그치지 않는 것처럼 디자이너도 전통디자이너의 개념을 넘어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금방 튀어나오지만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물을 끓이면 결국 그 안에서 죽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천천히 조여오는 문제들은 인식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가끔 이 사회시스템에 대해 고민을 해봅니다. 둔한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이 사회 문제의 문제점을 파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디자이너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아래는 위와 같은 취지에서 이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일까 고민한 내용입니다.
내용이 쫌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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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지난주 학생들 성적을 등록했다. 공부하고 싶어 온 사람들을 놓고 누군 몇 점 누군 몇 점 하는 야만적인 행위,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면 나도 그들에게 분명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제도권 내에 있는한 결국 일방적인 평가는 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대학원과정이라 절대평가다. 내가 주고 싶은 만큼 듬뿍 퍼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다행이다. 무언가를 듬뿍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모두에게 최고점을 부여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정말 열심히 한 사람에게 미안해서이다. 정말 열심히 하고 노력한 사람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등을 두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부여된 성적을 말하면서 수긍해야만 하는 학생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을 리가 없다. 현실과 여건 탓을 자신의 탓으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 이 역시 불공평하다.


우리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이 상대적 자괴감이다. 학창 시절 과제 검사를 위해 기다리다가 다른 친구들의 과제를 보고 조용히 화장실에서 어설퍼 보이는 내 과제를 찢어 버렸던 기억. 더 거슬러 올라가 엄마가 엄마친구의 아들을 들먹일 때마다 정말 화가 났던 기억. 직장에서는 또 어떠한가.
이런 상대적 스트레스는 대부분 상대방이 나보다 우위에 있을 때 생길까? 아니 그렇지 않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상대방의 능력과 노력이 나보다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훨씬 열심히 했고 또 성과를 인정받고 있음에도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치자. 열심히 한 자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한 것일까? 성격 탓일까? 열심히 해서 내적안정을 취하는 사람과 항상 놀아야 내적 안정이 취해지는 사람이 똑 같은 선상에서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불공평하지 아니한가. 능력 있는 사람과 능력 없는 사람 모두 스트레스의 대상이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 서로 부대끼면서 마찰이 생긴다. 그 마찰을 최소화 하고 사회적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끊임없이 수정해 왔다. 현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대물림 되고 있고 엄청난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의 실험은 결국 인류의 진보라는 차원에서 도태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사회자본주의 국가들이 빠르게 자본주의적 성향을 띄어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렇게 가다간 다시 인류 사회에 계급제도가 생길 것 같다. 아니 이미 신왕족과 신귀족들이 부활했다.
능력 있는 사람도 챙겨야 하고 능력 없는 사람도 챙겨야 어울려 살아 갈 수 있다. 자유도 있고 평등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자들의 자유논리와 사회주의자들의 평등논리는 물과 기름의 관계이다. 절대 어우러질 수 없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내가 능력 있다고 나보다 능력 없는 사람을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내가 능력이 없다고 무턱대고 나보다 능력 있는 사람을 존경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나보다 능력 없는 사람을 존경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자본주의 등등 어떤 사회제도를 가져와도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어우러지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법과 제도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에 있다.
교육하면 먼저 학교를 떠올린다. 나는 어른이 되면 공부를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어릴 적 나는 어리석었다. 커서도 공부할 수 있는데 그때 모든 걸 다 끝내려고 하였다. 그때 내 인생을 결정지으려 했다. 아직은 어린 아이가 성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하는 슬픈 현실이 한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 어쩌면 삶 그 자체가 공부의 연속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미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어른들이 '공부'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회의 교육시스템이다. 이 사회는 모든 교육시스템을 학교에 집중한다. 애들한테만 관심을 쏟는다.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구? 책임을 전가하지 마라. 지금 사회를 끄는 어른들이 진정한 미래의 희망이다. 어른들은 그냥 술이나 퍼마시고 테레비나 보고, 이따금씩 등산 같은 스포츠를 하라고 무의식중에 강요당한다. 물론 어른을 위한 다양한 학원이 있다. 이 또한 대부분 학교 교육의 연장선에 있는 학원이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일하기도 지치는데. 책 읽는 것은 또 얼마나 지루한가... 나도 책 읽는 거 싫다. 내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진지하게 나눌 대상이 과연 주변에 몇이나 있는가. 이렇게 우리 사회는 어른 교육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사실 공부한다는 것, 무엇을 새로 알아간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행위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욕심이 언제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교육은 단순히 학교안에서 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교육시스템이다.


다시 처음 제기한 문제점으로 돌아가 보자. 법과 질서의 회복으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힘들다. 돈과 권력으로 점철되는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겠는가. 일방적인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또 온갖 매체에서 이를 주입시키고 있는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의 균형은 너무나 상반된 논리일 수 밖에 없다. 무언가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다행히 인간은 다양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고 여러 분야에서 그것들을 개발해 왔다. 또 지금 사회는 아무리 하찮은 능력이라고 어느 수준에 올라가면 인정을 해준다. 잔디밭에서 작대기로 공을 잘 때리는, 그리고 슬금 슬금 걸어가 구멍에 공을 넣는 행위.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 전혀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최고의 부를 누리고 인정받는 세상 아닌가? 또 남을 주먹과 발길질로 때려 눕히는 야만적인 행위를 잘해도 최고의 대우를 받고 그 성품까지 인정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한들 부끄러운 것이 있겠는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 나도 공부하기 싫지만 분명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준다면 정말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 또 우리는 거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서 무능력함으로 받은 스테레스를 충분히 보상 받을 수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가진 것을 뽐내고 남이 가진 것에 박수 칠 수 있는 사회적 틀만 구성된다면 또 그 다양성을 늘려간다면 상대적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될 수도 있고 새로운 형태의 자유과 평등을 화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리고 앞에서 골프와 종합격투기의 예로서 언급했듯이 이미 일부 실현되고 있다.
이를 확대하기 위해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이 교육의 혁명적인 패러다임 변화이다. '공부'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어른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 아이들이 교육의 압박을 덜 받게 되는 사회. 이런 사회적 문제의식이 우리가 처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아이들이 공부에 너무 지쳐 있다는 것을 잘안다. 하지만 어른들, 자기 자신이 공부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어 주는 것, 이것이 이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진정 추구해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세상은 공부한 누군가가 바꾸기 마련이니까.


점수를 많이 못준 후배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당혹스런 현실에서 공부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최고의 점수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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