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_처음   |   GUEST_방명록
나의 타이포그래픽 정의 #2
Design | 09/03/04 18:00
3. 타이포그래픽 세가지 정의의 구체적 접근




1. 개념의 영역


-만화의 이해(스콧 맥클라우드)이지원 선생에게 작년 소개받아 본 만화책이다. 아니 인문학 서적이라 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형식만 만화일 뿐 책 내용은 절대 간단치 않다. 이 책을 읽고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이 사람. 스스로 만화를 정리했구나...” 아무것도 정리를 못하고 배회하는 나의 지식과 수준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무리 알량한 지식이라 할지라고 반드시 스스로 정리해 나름대로의 논리체계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만화의 이해에서 이미지를 삼각형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챕터가 있다.
여기에 따르면 맥클라우드는 이미지를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한다. ‘현실’ ‘형태’ ‘개념’ 이 세가지가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놓고 그 안에서 이미지들의 변화를 보여준다. 여기서 현실의 꼭지점은 사진, 형태의 꼭지점은 동그라미(네모, 세모 등), 개념의 꼭지점은 바로 문자다.
문자는 현실이 개념화 되면서 탄생되었다고 맥클라우드는 정리한다. 난 이 의견에 상당히 공감한다. 갑자기 짠~ 탄생된 문자는 세계적으로 ‘한글’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통용되는 문자들은 오랜시간 현실을 개념화 하면서 다듬어져 탄생된 문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기에 문자를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분명 그 문자 하나가 의미하는 바가 존재한다. 물론 현재 알파벳에서 그런 형상성은 전혀 찾을 수 없지만 한자의 경우 아직 개념의 추상화가 아직 덜 진화되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문자는 개념적으로 부유하며 조합되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런 문자의 개념을 무의식중에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자세한 내용은 만화의 이해를 참조하길 바란다)




-페르디낭스 소쉬르(1857~1913년, 스위스)
“네가 보는 시각이 사물을 창조한다는 관점이다”
이 말은 당시 고대 그리스 철학에 빠져 있던 사상세계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고, 그 이후 동시대를 조망하는 근대 철학에 큰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고 한다.
소쉬르는 당시 여러 학문을 통섭하였지만 유독 언어학의 아버지, 때론 기호학의 아버지로 불리듯 언어학에 있어 탁월했다. 그의 위대성은 당시 단어의 기원 연구에 빠져있던 언어학을 동시대에 있어 단어와 언어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방식으로서 언어학을 새롭게 접근했다는 점에 있다고 한다. 즉, ‘시간’이란 단어에서, 그 기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서 ‘시간’의 개념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소쉬르의 말과 상통하는 맥락이다. 곧 우리가 현재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단어가 진정 우리의 언어이고, 동시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이고 철학이다는 관점이다.
그러면서 소쉬르는 언어를 일종의 기호로 보았다. 주변을 돌아보자. 온통 기호들 투성이다. 시계를 보아도, 책에서도, 사람들을 보아도 온통 기호로 무장되어 보인다. 현재 우리는 거의 기호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디자이너들은 기호를 생산해 내는 첨병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기호 이야기는 깊게 가져가지는 않겠다)
타이포그래픽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대상자체가 기호이므로 일종의 기호를 만드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소쉬르의 기호 의미는 중요하다. 즉, 자신이 창조하는 기호가 과연 동시대에 맞는 적합한 기호인가? 혹은 재창조한 기호가 대상과 관계성이 있는가? 나아가 과연 설득할만한 논리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기호를 다루는 디자이너에게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질문이다.
소쉬르는 언어의 진정한 가치는 문자의 독자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에 있다고 본다. 문자가 조합되어 단어가 탄생하고 또 단어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탄생한다. 이렇게 문자와 단어들의 관계가 우리에게 의미를 만들어주고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에 디자이너들은 그 관계를 재설정하거나 혹은 관계의 의미를 부각시킴으로서 미를 창조하고 의미를 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의미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서 의미를 숨쉬게 하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렇게 기호로 이루어진 타이포그래픽을 함에 있어 개념의 영역인 문자와 그 연결성의 고리를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본다.





2. 의미의 영역(글쓰기, 말하기)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행위는 머릿속에 있는 문자와 단어를 조합하여 의미를 생산해 내는 행위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항상 지배받기 마련이다. 즉 언어자체가 문화권을 형성하고 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언어의 틀안에서 생각을 지배받는다.
빅터파파넥은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단순히 언어적 표현수단의 확충이 아니라 생각의 폭을 넓히는 행위라고 말한다. 이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이 곧 다른 문화를 배우는 행위라고 해석된다. 어순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상당히 고된 행위지만 일단 배우고 나면 생각하는 틀이 그만큼 넓어짐으로서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가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외국어에 약해 실제로 겪어보지 못해 더욱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렇듯 언어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앞서 생각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봐야한다. 이것은 앞서 등장한 소쉬르의 입장과도 같다. 앞에서 말했듯 소쉬르의 언어학은 공시대적 접근으로서 단어와 언어를 보았기에 공시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단어), 즉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언어가 그 시대의 언어이고 문화라는 입장이다. 나아가 소쉬르는 언어는 그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표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낱말을 구별하는 음성의 차이가 의미작용을 수반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어의 실제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단순히 단어의 형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할 때 단어의 높낮이, 글을 쓸 때에 단어의 위치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우리는 말은 쉽게 하면서 글쓰는 행위는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즉 머릿속에서 단어의 조합은 잘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뭔가 표현하려고 하면 주변의 제약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쓰기를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글을 쓰자고 하면 손사레를 친다. 반면 글을 잘 쓰는 사람들 중에 말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글로 표현하는 것은 몇 번 수정이 가능하지만 말은 한번 내뱉으면 끝이기에 말을 극도로 아끼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수줍은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머릿속에서는 이미 단어를 조합해 의미가 담긴 언어를 생산하고 있지만 밖으로 꺼낼 때 상황적 제약 혹은 뭔가 잘해보려는 강박관념에 빠져서 제대로 표현해 내지를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앞서 (정시화 선생님이 언급했던) 디자이너에게 ‘디자인하기’ 뿐만 아니라 ‘말하기’와 ‘글쓰기’도 중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기와 글쓰기는 정말 최고의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노벨문학상을 받는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디자인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이야기이다.(물론 더 잘하면 더욱 좋겠지만...)


이런 기저에서 글쓰기와 말하기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주변 디자이너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말하듯 글을 쓰고 글쓰듯 말하라고... 문어체, 구어체 따윈 염두에 두지 말라고, 사실 문어체, 구어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기 마련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녹음해 글로 옮기면 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을 쓰듯 천천히 말하면 된다. 이렇게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서 비로소 자신이 생각을 문자로 조합해 표현할 수 있다.
(정시화 선생님도 논문 지도를 하실 때 학생들에게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나아가 한 가지 더 충고한다면 최대한 짧게 쓰고 말할 것을 권장한다. 글이 장황해지고 말이 장황해지면 반드시 은유와 동어반복이 끼어들게 되고 전달하려는 의미(정보)가 희석된다. 그렇기에 글을 쓰면 반드시 반 이상 줄이도록 노력하고, 말할 때는 최대한 참았다가 정리해서 쏟아내면 좋다고 충고한다. (충고는 하지만 나 또한 지키기 어렵다. ㅠㅠ)


이것은 디자인 단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미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야지 전달 가능한 표현으로 연결된다. 의미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디자인을 하게 되면 의미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표현에만 몰두해 결국 자가당착에 빠져 모호한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온갖 미사여구로 디자인을 포장해야 할 것이며 결국 장황한 변명을 논리인 마냥 늘어놓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디자인은 사라지고 말과 글만 남게 된다.
결국 디자인(타이포그래픽)을 잘 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하는 대상에 대한 파악에 대한 연습과 자세가 충분히 갖추어져야 한다. 이렇기 때문에 타이포그래픽에서 말하기와 글쓰기(의미의 영역)은 상당히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3. 다루기 영역


사실 다루기 영역은 실제 우리가 말하는 디자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에게 지극히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고 지식을 뒷받침할 논리와 철학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사실 나는 각 디자이너의 경험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다지 언급하기를 꺼리는 편이다. 무슨 말을 하든 지극히 내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일 뿐 일반적인 영역으로 가져오기에는 무리가 있다.
너무나 방대해서 특별히 언급할 수도 또 알 수도 없다고 보는 것이 내 관점이다. 서체와 서식은 둘째 치더라도 상황에 따라 그날의 실내온도, 기분, 장비, 클라이언트, 대상, 매체 등등 너무나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많다. 또 언급할 자신도 없다. 그러므로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 한글에 대한 폄하는 좀 짚고 넘어간다. 많은 디자이너들 혹은 클라이언트들은 한글에 대해 별로 디자인해도 이쁘지 않다는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어디를 둘러봐도 한글처럼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가 분명한 문자는 이 세상에 없다. 위대한 문자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조형성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언제가 일본에 갔다가 비상구 푯말을 본적이 있다. 거기에는 한문, 영어, 한글이 같이 나란히 고딕체로 씌여 있었다. 영어는 그렇다 치고, 동양의 문자중에서 고딕체로 쓰여도 이렇게 조형적인 형태로 쓰여 질수 있는 문자가 있는가? 난 모르겠다. 별로 없다고 본다.
우리는 한글로 생각하고 한글로 말한다. 그렇듯 이미 한글화된 인간이다. 한글을 부정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한글의 위대함을 뒷전에 두더라도 한글인간이 한글을 폄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한글을 다룰 때 글자 하나하나를 고운 눈으로 보면서 소중히 다루워 주었으면 한다.




-------------------------------------------------------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선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아는 것과 행함이 같아야 한다고 했다. 아는 것이 선하면 행하는 것도 선하기에 아는 것의 선함에 힘써야 하며 자신이 항상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선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즉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행위가 겉으로 보았을 때는 선한 행위일수는 있지만 만약 살아난 사람이 ‘히틀러’였다면... 헉! 구해준 사람은 결국 선한 행위를 한 것인가? 이런 맥락에서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이 뭔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선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확한 상황판단을 하는 판단력과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확한 상황판단이란 단순히 그 상황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앞뒤의 맥락을 이해하고 상황과 대상에 대한 최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디자인. 타이포그래픽. 어떨까... 아니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에 이르는 방법을 다시금 되새긴다.
 
 
 
관련글(트랙백) | 댓글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ecocreative.net/tt/rserver.php?mode=tb&sl=478

아이디
비밀번호
홈페이지 비밀글로 저장
내용
 






[PREV] | 1 ... | 90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 | 124 | [NEXT]
ecocreative _ecological + creative
> Calender; 
>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763)
Portpolio (99)
News & graphic (57)
Life (247)
Green_design (131)
Design (124)
Book (45)
memo (60)
> Article
+ 블로그 이동
+ 디자인에 박사 학위가..
+ 새 블로그
+ 메모
+ 갈림길
+ 디자인과 테크놀로지_..
+ 공생 공존
+ 이제석
+ 빈센트 반 고트(goat, 염..
+ ‘디자인 광풍’이 낳.. (2)
> Comment
+ 랜드의 선봉장~!! cod..
+06/24 - awdawd21
+ 카 지 노의 선봉장~!! ..
+11/06 - 김혜수
+ 어제 SBS스페샬의 "..
+12/10 - christa
+ 지금 보니까... 저도 4번..
+08/25 - 여경
+ 경향신문의 CI가 이렇게..
+08/24 - 윤희형
> Link
+ 강구룡 griong
+ 강주현_jdextaphor
+ 경향신문
+ 구정은 ttalgi21
+ 구혜린 greendolphin
+ 권승순 suede94
+ 권준호 jhkwon
+ 그룹사운드 magenta
+ 그린디자인전공
+ 김성라 rockoon
+ 김유진 greenankh
+ 김의래 euirae
+ 김진수 irrawaddy
+ 디자인 시장
+ 디자인 읽기
+ 서용빈 pyrechim
+ 성재혁 iamjae
+ 손미현 sohnmyun
+ 식탁 jejeji
+ 유혜인 haein85
+ 윤여경 ecocreative_2
+ 윤여경 새 블로그
+ 윤호섭 greencanvas
+ 이경재 ecodress
+ 이명우 greening
+ 이여형 liveinharmony
+ 이지원 hongjt10
+ 이진윤 leejeanyoun
+ 전씨 amberjeon
+ 정진열_therewhere
+ 제주부부 arooki
+ 지속가능디자인포럼..
+ 최성민_minister
+ 커뮤니티 nongjang
+ 트위터_tigeryoonz
 Trackbacks
 Archives
 Visitor count
_위치_이웃로그 +RSS +관리자

 

 

Warning: Unknown(): write failed: Disk quota exceeded (122)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session_path)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