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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추모하며...
Life | 09/05/27 15:39
진정한 바보 노무현을 추모하며...



금요일 저녁부터 뭔지 모를 압박감이 있었다. 뭔가 일이 잘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괜한 패배감. 자괴감이 온 몸에 엄습해왔고 마음은 왠지 무거웠다. 토요일 아침. 늦장을 부리며 TV를 꼈다.


'노무현 사망'


내 눈을 의심했다.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계속 되는 사망관련 뉴스특보가 일상의 뉴스처럼 느껴졌다. 문재인 전 청와대비서실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벽에서 투신하여 사망하였다고 짧게 언급하고 들어갔다.
현실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뒤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오늘 전원 출근이랍니다. 서두르세요.” 그날 우리회사를 비롯한 여러 언론들이 호외를 찍었다.


노무현. 그는 지난 8년간 뉴스에 중심에 있었다.
그는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과도기적 세상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는 완성된 인간이 아닌 완성되어져 가는 인간이었고 그의 행동과 발언은 연일 대형기사거리가 되었다. 그만큼 대한민국 정치사회는 뉴스적 가치를 가진 인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75년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딘 노무현은 적성이 맞지 않는다며 7개월 만에 변호사로 전업한다. 조세변호사로 명성을 누리며 잠깐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그의 정의감은 결국 그를 인권변호사로 이끌었다. 수많은 인권재판에서 맡았던 그는 군부정권에 있어 눈에 가시가 되었고 급기야 변호사 자격 마져 박탈당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원래 능력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세상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능력이었다. 그는 소신을 위해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최대 무기는 ‘원칙’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감옥에서 노무현을 발탁했고, 노무현은 부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한다. 초선의원이었던 그는 5공 청문회에서 특유의 무기 ‘원칙’에 입각하여 소신껏 발언했고 이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국민들의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된다. 당시 5공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다른 국회의원들이 소신껏 발언하지 못하자 “아직도 전두환이 당신들 상전입니까?”라고 외치며 소신껏 전두환에게 퍼붓는 장면은 유명하다.
결벽증과도 같은 그의 원칙은 정권에 욕심을 부린 김영삼과 노태우의 삼당합당에 극렬히 반대했고 원칙에 입각한 소신에 의해 여당의원이 될 절호의 기회를 버렸다. 그리고 김대중과 만났다. 종로 보궐선거에서 야당으로 뺏지를 달기도 했지만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연거푸 고배를 마신다. 부산출신이었던 그는 당시 야당(국민회의)이라는 이유로 떨어지는 현실을 한탄하며, 우리 사회에 고착된 지역주의를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다. 결국 부산에서는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소신은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었고 이로 인해 그를 ‘바보’라고 부르는 정치적 지지층인 노사모가 탄생했다. 나아가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어 대통령이 된다.


의원시절 노무현은 C일보와 소송이 붙은 적이 있었다. 당시 C일보의 위상은 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그때부터 노무현과 보수언론과의 길고 질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보수언론과의 갈등은 매번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노무현은 갈등의 길을 택했다. 보수언론과 노무현의 갈등은 퇴임 후까지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어떤 언론학자가 발표한 논문에서 C일보의 노무현 관련 만평 중 30%가 노무현 개인을 비꼰 내용이었다고 한다. 비록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지만 C일보에서는 한 개인이었다.
그의 소신은 보수언론만이 아닌 검찰을 비롯한 지금까지 권력을 가졌왔던 대부분의 계층과 갈등을 빚었다. 지지층과도 갈등을 빚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지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한미FTA는 노무현과 그의 지지층의 괴리를 가져왔고, 결국 국민대부분을 적으로 돌린 채 대통령 임기를 마쳤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이 만들었다는 말을 종종 하듯이 그만큼 노무현이 우리 사회에 준 수많은 갈등과 파장들은 엄청난 피로감을 누적시키기도 했다.


비록 씁쓸한 대통령 퇴임이었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여전히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다.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간 그는 특유의 인간미로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고 뉴스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인기는 반대하는 자들에게 항상 경계의 대상이다. 몇 번 노무현에게 뒤통수를 맞은 보수세력은 정권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노무현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전에도 홀연히 나타난 탕자 노무현에게 모든 것을 빼았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뭔가 계속 꺼름직한 대상이었다.
1년 후 모든 상황은 노무현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국가기록유출물 논란에서부터 호화사저(?) 논란, 소고기 수입의 책임 문제 나아가 측근 비리와 청탁, 돈 문제까지 꼬리를 잇는 논란은 그를 계속 압박했고 급기야 검찰에 출석하는 사태까지 이어왔다. 노무현은 그렇게 살아왔듯이 항상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의 정면돌파 의지는 급기야 그의 측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측근들 대부분이 구속되거나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가족들이 모두 검찰에 몇 번씩 출석하는 등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감내 했어야 했다.
비록 홈페이지를 통해 “돈을 얻어 쓰는 것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라고 피력하며 저항했지만 노무현 자신이 돈 문제에 결부되었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뒤에 이어진 글중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문장에서 볼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짐작할 만 하다. 결국 노무현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버렸다.


나는 노무현을 좋아했다. 아니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존경했다.
그의 정책과 방향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또 그가 추구하는 소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기 보다는 항상 대화하고 설득하기를 시도하고 의지를 알리려고 노력한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얘기하고 듣고, 만들어가는 그의 방법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정말 절실한 접근이다.
노무현의 자세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대한민국의 고착된 편견을 벗게 만들었고, 이 사회에서 계급과 권력에서 오는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겼다. 옳은 것은 이래서 옳고 그른 것은 이래서 그르다는 논리적인 분위기가 필요한 세상을 만듦에 일조했다. 공권력의 두려움, 권력의 두려움에서 자신의 논리와 떳떳함으로 꼿꼿이 설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 그 노력은 빛나지 않았고, 배고픔과 삶의 어려움은 그의 업적조차 덮어 버릴 만큼 컸다.  


나는 이 비통한 사태에서 국민통합이니 진보의 분노, 또 나아가 현 정권의 탄압 등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 입장에서 노무현의 투신은 곧 이 시대와 사회를 소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노무현은 진보에게서는 '얼치기 진보'라는 하마평을 받기도 했고, 보수에게서는 '극좌파'라는 우대를 받았다. 중간자적 입장을 가지고 어느 한쪽에 기대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낳는다. 바로 왕따.
노무현은 자신의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늘 소신과 정의감으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리고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실패는 했을지라도 적어도 패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늘 당당했다. 스스로가 자신의 소신을 져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그런 인생을 살기란 정말 어렵다. 차라리 산속에 들어가서 세상과 등져버리는 것이 속편하다. 하지만 노무현은 지극히 현실세계에서 그것도 가장 더러워 보이는 정치판에서 소신껏 살았다. 온갖 핍박을 받으며...
노무현의 투신과 죽음은 작금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소신껏 살아가는 사람들의 투신과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그가 살아있음 자체는 소신대로 살고 싶어나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존재 이유였다. 주변에 흡수되지 않고 스스로의 소신을 지키고 부대끼며 살아감에 있어 일종의 상징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지금 나는 엄청난 혼란에 빠져있다. 이 혼란은 울음이나 어떤 위로의 말로 달래지는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과연 내가 잘 해 나가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나 자신 스스로에게 던지는 의심이자 혼란이다.






노무현, 당신은 내게 있어
이 시대의 민주화의 상징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상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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