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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예술
Green_design | 09/09/11 17:48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야나기무네요시의(이후 야나기) ‘공예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빅터파파넥을 몇 번을 반복하며 읽고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던 나의 기본 디자인 철학이 나무라면 야나기의 디자인방향은 뿌리와 같은 기분이었다. 빅터파파넥을 통해 디자인의 바람직한 방향을 표면적으로 이해했다면 야나기를 통해 디자인의 존재의 의미로 좀더 깊숙히 들어감으로서 기초적인 소양의 부족함을 느꼈다.


야나기의 공예에 대한 관점은 20세기 초 그 시대에 근거해 쓰여 졌지만 현재디자인의 상황에 빗대 공감하는 바가 컸다. 그의 이론은 현대디자인 문제점의 지적이며 앞으로 디자인의 나아갈 방향으로 여겨졌다.
야나기가 활동했던 시대는 20세기 전반부이다. 세계적으로 사회구조를 포함한 구시대의 잔재들에 대한 각성과 혁명, 변화의 바람이 크게 불었던 격변의 시기였다. 이때 예술분야도 이 변화의 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실 디자인의 탄생도 이 시기 상류층 위주의 예술에 대한 각성에서 발현되었다. 그렇기에 과도기 시절의 야나기의 관점은 예술변화의 호소였다.
그 호소는 당시 예술의 비판이며 비판에 근거한 예술의 방향이다. 야나기는 잘못가고 있는 개성과 관념적 예술의 대안으로 대중들의 생활 속에 있는 공예를 내 놓았고, 이른 민예라고 불렀다.
이 관점은 바로 지금의 '디자인'과 비슷한 면이 많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디자인도 과거 예술의 답습으로 점차 개성적이과 관념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자본과 밀접하게 결탁하면서 그 본질을 상실한 채 자본의 첨병으로 변질되었다. 최근들어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으로서 지속가능디자인, 그린디자인 등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중 그린디자인을 고민해왔던 나로서는 야나기의 미래 예술의 방향, 공예의 방향이 바로 지금 언급되는 지속가능 혹은 그린디자인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즉 그린디자인이 본래의 디자인 방향이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야나기에 크게 흥분했던 나는 야나기의 공예문화를 윤호섭 선생님께 선물했다. 선생님은 야나기에 대해 알고 계셨지만 다행히 아직 책은 보시지 않은 상태였다. 며칠 뒤 선생님은 짧지만 깊은 책에 대한 의견을 주셨다.
“야나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견이 있는 줄은 몰랐네”
“책의 연도, 야나기의 활동시기를 볼 때 톨스토이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네,
야나기와 톨스토이의 관계를 알아보게”

나는 야나기의 책 몇 권을 구입하고 그의 사상적 관점을 알아보았다. 그는 단순히 조선예술을 찬양하고 공예를 언급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 아나키스트였다. 즉 아나키스트의 사상적 대표주자격인 톨스토이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톨스토이는 굳이 분류하자면 종교적 아나키스트이다. 톨스토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당시 신을 부정하고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성 일변도로 변해가는 사회에 큰 반감이 있었다. 그 개인주의는 민중으로서 개인이 아닌 중상류사회의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은 모든 생산의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여전히 민중은 억압되고 착취당하고 있었다.
또한 톨스토이는 기존 교회중심의 기독교에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권위와 갈등으로 얼룩진 기존의 기독교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류의 가치가 바른 종교적 가치관 아래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기독교적 가치관의 근본은 평화의 사상이었고, 평등을 우선시 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진정한 행복한 삶과 사회가 무엇인가를 추구했다. 이는 동서양 사상을 포용하고 있었기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었다. 익히 노자를 번역했던 톨스토이는 비록 기독교신자였지만 불교, 노자, 공자 등의 동양적 종교관에서 바른 사상들을 받아들였고, 이런 가치들이 인류를 통합하고 바로 세울 수 있는 토대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20세기 전반의 청년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동양에서 개혁개방이 빨랐던 일본의 각성된 젊은이들에게 톨스토이의 사상은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야나기 평전에서 톨스토이의 이름이 목차에 직접 거론된다. 인류 평화의 사상이다. 이 평화의 사상, 평화의 가치는 당시 유행하던 자본에 근거한 자유의 가치관 직접적으로는 대립된다. 평화를 위해서는 일정부분 자유를 통제해야 한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이 통제의 가치가 바로 종교적 가치인 것이다. 야나기는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사회분위기와 그가 활동했던 시라카바잡지의 선배들에게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톨스토이의 이런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이렇듯 야나기와 톨스토이는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야나기는 ‘공예문화’에서 보듯 종교적,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점차 문화와 예술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야나기의 예술적 관점은 민중을 지향하는 평화사상의 토양에서 자라났기에 자연스레 상위예술 보다는 민중예술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야나기는 산업적 발전이 늦었던 조선 문화와 생활예술에 매료된다. 그는 조선에 예술에 매료되어 당시 극소수였던 지한파가 되었으며 조선의 예술을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일본과 오랜 기간 동양을 호령했던 화려한 중국문화 비해 발전이 더뎠던 조선은 상위계층의 예술보다는 민중예술의 넓게 잔존되어 있었기에 야나기가 조선의 예술에 빠졌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물론 야나기의 조선과 중국의 예술에 대한 접근은 일본예술의 독창성을 찾기 위한 시도에서 나왔다는 의견이 있다. 야나기의 예술적 관점은 초반에는 생활예술 보다는 개성적, 천재적 예술론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는 그의 사상적 관점과 일부 대치되는 면이 있었고, 일본예술의 독창성을 생활예술(다도)에서 발견함으로 인해 예술에 대한 그의 관점은 급격히 변화하게 되었다. 좀더 깊에 가면 야나기의 민중예술적 관점이 사회계급이나 예술계급을 나누고 이를 비교하거나 상호보조하는 블레이크의 이원론적 방법에 근거한다고 하나 이는 일종의 접근법일 뿐이고 이를 가지고 그의 예술적 관점을 폄하할 수는 없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조선예술을 비애의 미라고 말했던 야나기의 관점이 식민지 시대의 강자의 논리라는 비판이 있지만, 조선예술에 대한 그의 예술적 찬양은 설득력이 있다. 비교적 관점에서 조선예술을 비애의 미라고 했지만, 조선예술 자체적 조망할 때 야나기는 조선의 예술은 남성적 예술, 선의 예술, 건강한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관점으로 연결할때 그는 조선의 민중예술을 최고의 예술로 보고 있다.
또한 야나기는 일본 예술적 최고의 가치를 쓸쓸함(사비시이)에 있다고 말하며 이것은 세계에 새로운 예술적 관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즉, 그 문화에 맞는 예술적 가치를 찾는 노력은 자신의 조국만을 위한 행위가 아닌 예술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나온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야나기의 예술적 관점은 톨스토이의 예술적 관점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야나기의 평전 혹은 예술론에서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상적 관점에서 엄청난 영향을 받은 그가 예술가였던 톨스토이의 예술론에 분명 공감했으리라 짐작된다.

톨스토이의 예술론을 조금 살피면,
톨스토이는 그의 말년의 저서인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머리말에서 친구에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과 자신의 예술적 시각이 너무나 다르다'고 언급하며 뭔가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의무가 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십여년 동안 예술, 미학적 관점들을 연구하였다. 나아가 동시대의 예술들을 분석하여 하나의 예술론을 정립한다. 내용은 길지 않지만 쉽고 간결하며 새로운 통찰이다.
톨스토이의 예술적 관점은 본래 예술의 근본 취지는 예술가가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고 공유하면서 기록함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올바른 가치관과 바른 세상을 위한 감정이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대 예술은 어렵고, 복잡하고, 관념적이고, 쾌락에 의지하는 상위 예술로서 민중에 괴리되어 가고 있기에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며 그 잘못된 이해는 종교적 가치의 상실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종교적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예술을 대중으로 옮겨 바른 예술로서 나아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을 만들고 평론에 의지하는 당시의 예술은 이 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톨스토이는 이 책을 그가 죽기 얼마 전에 탈고했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에 예술에 얼마나 많은 사색을 했는지 반증한다. 방대한 치적을 남긴 그가 마지막에 집중했던 것은 바로 예술과 문화였다. 그 만큼 예술이 사회변화에 끼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모든 예술적 가치는 이것을 염두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 톨스토이의 예술적 관점은 바로 야나기의 예술적 관점으로 이어졌다고 가설하면,
야나기는 공예문화의 서문에서 자신은 유럽에서 거론되는 공예적 관점을 배제하고 동양적 관점에서 기술한다고 밝힌다. 그것은 공예에 있어서만큼은 동양적 가치가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있다. 이런 표현은 분명 톨스토이에서 영향을 받아 자신감을 가졌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톨스토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동양적 사상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동경했다. 야나기는 톨스토이의 예술적 관점을 토대로 당시 동양의 공예과 연계하여 생활로서의 예술의 회기를 주장한다. 이미 동양은 송나라의 도자기, 조선의 생활공예 등에서 그래왔기 때문이다.
야나기는 생활공예의 확대를 주장한다. 즉 희소성의 예술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고 이를 생활속에서 사용하면서 그 가치가 비로서 생긴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야나기의 글에는 대량생산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이것은 현대가 의미하는 대량생산이 아닌 예술의 희소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즉 사용되지 못하는 예술은 필요 없다는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당시 입장에서 대량생산은 현대적 의미의 대량생산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야나기는 마지막에 예술의 관점을 정립하여 이를 이론화 시키려 노력했다. 이것은 독일에서 무테지우스의 규격화 주장, 바우하우스의 활동 등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어쩌면 디자인이란 분야 자체가 이렇듯 예술의 생활화를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동서양이 같은 방향을 지향했다고 짐작된다. 이런 점에서는 민중속에서의 예술의 유연성을 주장한 톨스토이나 그가 영향을 받은 일본의 이시카와 등과는 다른 예술적 관점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듯 하다.


톨스토이에서 야나기 그리고 빅퍼파파넥으로 이어지는 예술과 디자인의 관점은 어느 선에서 일맥상통한다. 나는 그들의 사상을 거꾸로 확인해 가는 과정에 있다. 물론 완벽하게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현재의 그린디자인의 사상적 토대에서 어떤 줄기가 느껴졌다.
이들은 러시아, 동양, 그리고 서양의 사상으로 연결되어 지금의 나에게 들어왔다. 세상의 바른 가치관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현재 우리가 얘기하는 그린디자인의 의미는 이미 과거에 현인들의 각성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꼬리를 물고 물어 나의 가슴에 전달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사상을 좀더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자신의 시대에서 분명 문제점을 발견했고 이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노력은 확실히 소수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 소수의 노력과 영향은 결코 소수로서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신한다. 분명 세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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