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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직업, 디자이너 1
Design | 09/11/24 16:32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할까? 어떤 디자이너로 살아가야 하는가? 등 이런 질문들은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스스로 되뇌었을 질문이다. 하지만 한번쯤 혹은 수십 번 곱씹어도 고단한 생활의 틀에 갇힌 팍팍한 디자이너의 삶 속에서 딱히 납득할 만한 답을 찾긴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택한 가장 편한 방법은 맹목적으로 유명한 디자인을 쫒는 것이다. 유명디자이너의 사진을 벽에 붙혀 놓고, 그의 작품들을 조심스레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고, 그것을 은근 주변에 내보이고 그들의 디자인을 내 것인 것 마냥 얘기하거나 친분을 과시하며 내가 마치 그 유명디자이너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괜한 자신감이 생기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디자이너라는 초특급 울트라 메가 짱, 매력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었을 때는 이런 찌든 생활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무척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라 상상했고 세상이 나를 통해 많은 것이 바뀔 것이고, 주변의 부러운 눈길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빠져 있었다.
이미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매력은 증명된 사실이다. TV를 비롯한 온갖 매체에서 증명해 주었다. 소시적 즐겨 보던 드라마에 나왔던 ‘00디자인실장’은 그다지 일이 고되 보이지도 않으면서 왠지 세련되고 멋져 보였다. ‘그녀’ 혹은 ‘그’는 드라마 속 다른 캐릭터들과 뭔가 달라도 달랐다. 그들은 멋진 자동차에 간지 나는 수트를 입고 당당한 삶을 추구한다. 그는 때때로 회사가 위기에 빠졌을 때 중요한 역할들을 멋지게 해내곤 한다. 카메라는 그가 일할 때 얼짱 각도로 비추며 그가 회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 시킨다. 또한 그녀 혹은 그는 회장님의 따님이나 중역에게 환심을 사게 되고 환상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것을 보면서 멋진인생을 상상했고 디자이너가 된 자신를 꿈꿔 보았다.


그림을 제법 그릴 줄 알았던 사람은 누구나 멋진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가혹한 입시과정을 통해 결국 디자인학교에 입성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녹치 않다. 졸업한 선배들이 디자이너의 현실을 운운하고, 경고하고, 한탄해도 적어도 난 그렇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예전에 TV에서 본 디자인 실장도 분명 이런 과정을 겪었을 것이고, 자신도 반드시 그처럼 사회에 나가면 인정받고 성공하게 될 거란 희망을 품고 열심히 디자인을 공부한다. 아니 그냥 적당히 넘길 때도 많이 있다. 원래 디자인이 하고자 하면 끝도 없고, 적당히 해도 크게 티가 안 나기 때문이다.
졸업이 다가왔다. 점차 초초해지고 현실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예비디자이너로서 언젠가는 '00디자인실장'이 될 것이기에 스스로를 멋지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으며 나름대로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도 해 두었다. 스스로 실력도 있다고 자부하기에 취업에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00디자인 실장’ 정도까지는 아직 무리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런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계획대로 사회에 입성하게 된다. 다행이 운도 좀 따른다.


그러나,
이 회사 디자이너는 맨 날 야근을 밥먹듯 한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멋진 생활을 하긴 글렀다. 하긴 월급도 충분치 않다. 게다가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디자이너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다. 디자이너로서 청운의 뜻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 놈의 회사에서는 디자이너를 창의적인 존재로서 인정하기는커녕 하는 것마다 이래라 저래라 태클을 걸지 않나, 디자이너를 일종의 모르모트나 컴퓨터로 착각하고 이것저것 데이터를 들이밀며 온갖 수정을 요구하고 참견을 한다. 디자이너의 기통 찬 공간지각 능력과 창의력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결국 현실의 참담함을 몸소 체험해 줌으로서 ‘00디자인실장’의 환상적 꿈에 의심을 품게 된다. 하지만 ‘00디자인실장’도 이런 사회현실을 겪고 일어섰을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여전히 반복되는 디자이너의 일상, 여전히 쫓기는 듯한 고단한 작업, 창의력 따위는 서랍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 수동적으로 변해만 가는 현실, 얄팍한 시간 속에서 자기 개발, 자아 실현은 언감생심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 디자인 실장의 현재 일상도 일반 디자이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드라마 속 ‘00디자인실장’에게 속았다!. 아니 드라마에 속았다. 하긴 드라마가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았다면 롤모델이 된 그도 속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직 타협할 여지는 있다. 세상에 멋진 디자이너는 많고 나도 그렇게 될수 있다는 꿈은 버릴 수는 없다. 작품으로 승부하면 된다. 전에는 디자이너의 환상적인 삶의 기대는 깨졌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멋진 작품으로 눈이 돌아갔다. ‘00디자인실장’의 작품은 뭔지 잘 몰랐지만 여전히 잡지와 여러 매체에 소개되는 디자이너와 환상적인 작품들을 보면 디자이너의 직업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떻하지? 그래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던 디자이너의 작품과 사진을 뒤적거리며 스스로를 다잡자고 결심한다.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유명디자이너를 네이버에 검색한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왠지 멋있어 보인다.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그들의 작품을 출력하고 급기야 그의 사진까지 출력해 책상 옆에 조심히 붙혀 놓고 내 자신을 다잡아 본다. 안심이 된다. 뭔가 내가 조금 발전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좀 싫증난다. 다른 유명디자이너를 찾으면 뭔가 달라질 것도 같다. 그래서 또 다른 디자이너를 찾아 네이버로 떠난다.


네이버를 뒤적거리다 어떤 아저씨들이 ‘카라’의 ‘엉덩이 춤’을 따라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어설픈 춤사위가 꼴 사나와 낄낄대다가 순간 왠지 모르게 씁쓸해 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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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09/12/16 21:25 R X
여경오빠 오랫만입니다
나는 올 때마다 오랫만이네...
올해는 생전 처음으로 12월의 남은 날들이 너무 안타깝도록 아까워서 평소에 안하던 블로그 순회 중이예요
거의 10년만에 처음인 것 같네
다른 것보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 여기다 댓글 남겨요
아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생각나지만....각설하고
날 추운데 건강하시고 2010년에는 좀 더 행복하세요~

여경갤러거 09/12/16 23:29 R X
ㅋㅋ 소식 전해 듣고 있어서
그리 오랜만으로 느껴지진 않네
너도 2010년에 훠얼씬 행복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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