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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내큘러 디자인(Vernacular Design) 1
Design | 10/03/14 18:45
현대디자인을 보는 조감도 - 버내큘러 디자인




‘나는 미쳐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
장일순 선생님의 책 제목이자 글귀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을 뒤적이다 보면 장일순 선생님의 글씨를 칭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선생은 이렇게 반문한다. “나는 글씨를 잘 쓰는게 아니네, 저길 보게나 군밤장수가 군밤을 팔기 위해 쓴 저 글씨, 저게 진짜 잘 쓴 글씨야. 살기 위해 쓰는 글씨”


디자인을 배우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산업, 마케팅의 산물로서 디자인을 판단하고 그 방향을 가늠했다. 그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디자인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무너졌고 지금까지 팔기 위한 디자인과 디자인의 진정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최범 선생님의 강의에서 버내큘러 디자인에 대한 관점을 듣게 되었다. 단순히 버내큘러 디자인을 토속적 디자인의 관점에서만 알던 나로서는 무척 흥미로운 강의였고, 막연했던 의문들을 ‘버내큘러의 논리’로 일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버내큘러에 대한 이해는 빅터파파넥으로부터 출발한다. 빅터파파넥은 토속적 건축을 규정할 때 단순히 특정 시대 문화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니 토속적 건축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류의 일상과 흐름,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토속적 건축은 규정할 수 없다. 토속적 건축은 어떤 시대가 만든 것이 아닌 그 지역의 날씨와 여건 등의 특색들이 변화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이다. 토속적 건축은 수천년 동안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축적되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축적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최근 모더니즘의 세계적 확산과 미디어의 발전, 이에 따른 문화의 일방적 강요로 인한 세계화로 인해 많은 토속적인 건축물과 사물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일상 속에서는 그 문화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일례로 최범 선생님이 지적했듯이 동양의 좌식문화에서 살필 수 있다. 서양의 입식문화 도입으로 우리 거실에는 소파가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 일상은 여전히 그 아래로 내려와 소파에 등을 기대기를 좋아하고, 식탁에서 내려와 밥상을 차려 둘러 앉아 밥 먹기를 즐긴다. 이것은 우리 과거의 좌식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 또한 버내큘러가 아닐까 여겨진다.




최범 선생님은 버내큘러의 이해를 3단계로 나눈다.


1. 첫 단계는 버내큘러의 사전적 이해이다. 몇 가지 키워드로 나열하면 '민중의 디자인(People's design)' '토속적(지역적)인 디자인(Regional design)' '무명의 디자인(Anonymous design)' '아마추어(비전문적) 디자인(Amateur/Non-Professional design)' 등이다.
여기서 토속적 디자인은 익숙하다. 또 ‘아마추어’와 ‘무명’은 비슷한 의미로서 이해되지만 ‘민중의 디자인’은 조금 새롭게 다가온다. 민중의 디자인은 앞서 빅터파파넥이 말한 디자인과 비슷한 입장으로 여겨진다. 불특정 다수가 디자인에 관계되어 의식되지 않고 천천히 변화해온 디자인으로 설명 될 수 있다. 이런 디자인들은 시골의 농기구나 부엌의 일상에서 쉽게 발견한다. 일상의 사물들은 몇 세기를 이어오며 그 형태가 두드러지고 그 도구 자체가 또 일상의 흐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민중의 디자인은 쉽게 변화될 수도 변화시키기도 힘들다. 상업적 디자인에 둘러싸인 도시의 일상보다 시골의 정겨운 일상에서 더욱 안정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정서적으로는 이런 민중의 디자인에서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도시의 상업디자인에 의한 산물들은 편리한 측면도 있지만 자극제로서 욕구만을 부추겨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와 위화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2. 버내큘러 디자인 이해의 두 번째 단계는 버내큘러의 종류와 한국디자인에서 버내큘러를 아는 것이다.
버내큘러의 종류는 1)전통적인 것, 2)모던(컨템퍼러리), 3)수퍼노멀과 같이 전유된 버내큘러를 말할 수 있다. ‘전통적인 버내큘러’는 앞서 언급한 호미나 지게 등의 농기구와 같이 그 지역적 특색에 맞게 변화된 디자인을 말하고, ‘모던 버내큘러’는 동네 찌라시나 지방도시의 간판 등 모던디자인의 비전문적 디자인을 말한다. 그리고 ‘전유된 버내큘러’는 과거의 버내큘러를 다시 전문적 디자인의 영역으로 재조명하는 것을 말한다.
최범 선생님은 이 버내큘러 디자인을 가지고 한국 디자인 역사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한국 디자인의 출발을 어떤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느냐 있다. 전문적 디자인의 영역으로만(한국의 경우 산업디자인이 전문적 디자인이다.) 한국디자인을 본다면 최초의 한국디자인은 금성전자의 라디오이다. 하지만 좀더 넓은 시야로, 버내큘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생긴 고무신 등, 좀더 과거의 디자인으로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예로 최범 선생님은 과거 한국전쟁 당시의 일상을 담은 전시회에서 그 기발함이 탁월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수류탄으로 만든 호롱불은 정말 기가 막혔다고 회상하신다. 이렇듯 우리 민중의 일상은 이미 기발한 창의력으로 일상용품을 만들고 어렵던 여건 속에서 적응하기 위한, 살기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여건이 가져온 생활력과 창조성, 이것이 한국 버내큘러 디자인의 이해가 될 수 있다.
또 무릇 디자인의 속성이 그렇듯 모던 버내큘러 디자인은 모방과 표절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 버내큘러 속성만이 아니다. 디자인의 진보가 모방의 진보다.) 한국의 버내큘러는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전문적 디자인과의 간극도 조금씩 그 차이가 좁혀진다.
현재 한국의 도시를 보면 거의 짬뽕 수준이다. 그런데 이 짬뽕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한국 거리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물론 주류의 디자인은 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어울림을 한국 버내큘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의 특색 찾기 주장이 끊이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그런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앞서 버내큘러의 종류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전유된 버내큘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즉 한옥과 흙건축의 재강조는 이미 사문화된 주거문화를 굳이 끄집어내어 그 자체를 현대적 버내큘러 디자인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그것을 우리의 진정한 문화라 여기고 그 장점들을 부각시켜 ‘한국의 버내큘러’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그것은 단지 전통적 버내큘러로서 우리의 역사속의 인식에 그칠 뿐 우리 주거문화는 한옥을 선택하지 않는다.
최범 선생님은 이 대표적인 사례로서 우리의 한복을 얘기한다. 외국에서 한복이 찬사를 받고 한복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의복을 자랑거리로 삼고 있지만 한복은 패션으로서 일상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결국 한복은 ‘코스튬’일 뿐 ‘패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청바지는 코스튬이 패션이 된 사례로서 ‘전유된 버내큘러’의 입장에서 성공적이지만 한복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디자인이 세계 속에서 차별성을 갖고 인정받아 한류의 붐을 꿈꾸지만 여전히 ‘전통적 버내큘러’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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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10/07/07 22:57 R X
글잘읽었습니다
버네큘러에관한 여러가지 사실을 알게돼었습니다
여경갤러거 10/07/08 00:30 X
아 감사합니다. ^^
식탁 10/07/08 02:54 R X
어떤 분은 눈 앞에 앉은 학생들에게서 버내큘러를 벗겨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버내큘러에 대해서는 무척 극단을 오가는 반응이 보이는 듯 해요. 왜일까요?

여경갤러거 10/07/08 11:42 X
ㅋㅋ 세상을 보는 입장은 누구나 다르니까요.
다 똑같이 생각하면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어떤 단어가 던져지고 경험에 따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도 있지 않을까요. 더 잘 아시면서... ㅋ
식탁 10/07/09 02:54 R X
더 잘 알긴요- 모르는 것 투성이인걸요.
오늘도 한 없이 부끄러워지던걸요. 진짜 부끄러웠어요. 타인의 단순명쾌한 시선은 언제나 저를 부끄러울만큼 속속들이 들여다 보게 합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멀었다! 싶었어요. ^^

여경갤러거 10/07/09 13:09 X
선미의 시선은 상당히 날까로웠죠? ㅋ
가끔 고것이 내 마음을 후벼파서 아프게 하죠. ㅋ
그래도 지나고 나면 항상 속이 후련해요.
식탁 10/07/09 23:07 R X
아프니까 후련하게 시원하죠. ^^ 의기소침해질만큼 속도 상하고 아팠지만, 내심 기다리던 순간을 맞이했다 싶었습니다. 내 스스로 느끼고 있는 그 지점을 되레 스스로 슬쩍 못 본척 하고 있으면서도 "누가 나한테 좀 된소리 던져줬으면"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인간의 심리란 참 기묘하죠? ^^

그나저나 글을 다시 쓸 수 있을만큼 기력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도 뭉글뭉글 실천도 몽글몽글 보기도 좋고 속도 알찬 꽃들을 맺고 싶네요. ^^
여경갤러거 10/07/10 13:03 X
빨리 회복해서 식탁님의 이런 저런 활동과 글 기대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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