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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 1
Life | 10/07/04 14:34
이 글은 1/n에서 주최한 <우리 이대로 사랑할수 있을까> 세미나 후기이다.

또,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요일 저녁. 1/n에서 마련한 세미나 <우리 이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에 다녀왔다. 자크 라캉과 알랭 바우디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택광 선생과 서용순 선생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청중의 질문이 오가는 자리였다.

세미나가 끝난 후 같이 갔던 형님과 몇 마디 나누었다. 사랑은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는 키워드이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사회적 의미로 받아들인 반면 동행했던 형님은 현재 자신의 삶과 빗대어 정리했다. 세미나에서 나온 사랑의 이야기들을 온전히 자신의 삶과 비교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나의 비뚤어진 시선과 비좁은 세계를 한탄했다. 어쨌든 나는 이날 세미나를 통해 평소 품고 있던 사랑의 난제를 몇가지 해결했다. 그렇기에 그날 생각하고 느낀 점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우선, 라캉과 바우디에 대해서는 무지하니 그분들의 이론은 패스하겠다.




사랑의 시작
사랑은 남녀 존재의 차이, 여기부터다. 그, 그녀가 이성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과 행동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이다. 진짜 사랑은 그, 그녀가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서부터 시작된다. 이택광 선생은 김수현 작가를 인용하면서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순수한 사랑이든 불륜이든 어느 한순간에 찾아오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부딪치는 사건. 교통사고처럼 인지하지 못하다가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이것이 사랑이라 말한다.
사랑의 경험은 누구나 다르다. 어떤 하나의 틀이 있다고 해서 그 틀이 어떤 사람에게 정확히 들어맞길 기대하기 힘들다. 단지 각자의 상황에 따른 마음과 행동이 있을 뿐이다. 사랑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잡다한 수다처럼 공허한 울림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늘 귀를 쫑긋 세운다. 사랑의 감정은 늘 신선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삶에 있어 가장 큰 유희이며 삶을 끌어가는 활력이기도 하다. 건조한 삶에 갑자기 들어 닥친 사랑의 감정은 나를 이끈다. 그것은 상대를 향한 이끌림뿐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이끌림이다. 자신의 운명을 본격적으로 결정해가는 시작이 사랑이라는 것은 오래된 진리가 아니었던가.


사랑과 정치
사랑과 정치의 닮은꼴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신선했다. 보편적인 사랑은 남자와 여자가 나누는 사랑이다. 그렇기에 사랑의 기본 조건은 남자와 여자 최소 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의 만남이 사랑의 시작이고 둘의 헤어짐이 사랑의 끝이다.
사랑이 시작되면 남녀는 기존의 자기 주체성을 상실한다. 상대를 통해 자신을 확인해간다. 즉, 남자든 여자든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혼자가 아닌 둘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둘이 하나로 인식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사랑에는 갈등이 따른다. 갈등은 사랑의 지속을 위한 발버둥이다. 사랑의 갈등은 둘이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사랑의 감정이 둘 사이의 행복과 고통을 결정하는 운명적 고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고리가 끊어지면 사랑의 의무도 사라진다. 상대를 통한 감정이 사라지고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게 된다. 즉, 사랑이 소멸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와 통한다. 정치도 필연적으로 갈등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정치는 정당을 통해 이뤄진다. 사회에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존재하고 정당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서로 다른 이익이 부딪치면서 정치는 시작되고 서로의 균형을 찾아 가면서 정치는 지속된다.
그렇기에 정치에는 늘 대립구조가 존재한다. 하나의 입장과 하나의 정당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혼자서는 결코 갈등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연정이든 갈등이든 상대가 필요하다. 상대가 없는 정치는 더 이상 정치라 말하기 힘들다. 그것이 정당이라면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일 뿐이다. 균형이 상실된 정치는 더이상 정치가 아니다.
사랑과 정치의 갈등은 안정을 얻기 위함이다.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둘의 갈등은 하나가 되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기도 하다. 때로는 서로를 원망하지만 때론 서로를 갈구한다. 사랑과 정치 모두 대립구조를 통해 실현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무너지는 것은 서로 원하지 않는다. 안정을 지속하기 위해 불안정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과 정치는 닮았다.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사랑과 정치는 없다.
사랑과 정치의 공통점에서 오는 교훈이 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고 혼자일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지지고 볶고 해도 결국 서로가 존재할 때 안정을 느낀다. 불안정속의 안정이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눈을 뜨며 첫마디로 ‘사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의 (불)안정
지젝이 쓴 라캉 해설서에 나온 내용을 조금 각색해 본다. 어떤 남자 노숙자가 예쁜 여자연예인과 무인도에 갇혔다. 둘은 서로 관계를 가졌다. 관계를 가진후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친구인 노숙자처럼 분장해주길 부탁한다. 그리고 분장된 친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나 누구누구랑 잤다”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친다. 어떤 진리를 발견한 듯, 두근거림을 동반하고 엄청난 욕망을 느낀다. 소유의 욕망이다. 사물에 대한 일방적인 소유욕과 다르다. 자신이 어떤 존재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자신이 어떤 존재를 소유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소유함으로서 상대에게 인정받고 친구나 부모 등 주변에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소유의 감정이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사랑은 소유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사랑의 지속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정상적 삶의 궤도를 벗어나게 한다. 서용순 선생은 '부모들은 사랑에 빠진 자식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운을 뜨웠다. 사랑에 빠지면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사랑에 빠진 자녀를 결혼시키려 한다. 안정을 위해서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때로는 스스로 그런 자신의 행동에 위험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실천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성(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의지해 행동한다. 이성(생각)은 감정을 고민하고 반성하는 잣대일 뿐 거의 모든 행동은 감정에 의지해 결정된다. 감정에 의한 행동은 스스로의 안정을 위한 결정일 경우가 많다. 자신을 버리는 행동은 사랑의 안정을 위한 결정인 것이다.
사랑의 당사자들에게는 자신들의 감정에 의지한 행동이 안정일 수 있다. 그러나 주변의 객관적 시선은 반대일 경우가 많다. 너무 사랑해서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도피, 살인 등 수많은 범죄가 극대화된 사랑의 감정에서 유발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의 지속을 위해 갈등하는 사건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사랑은 불안정하다.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주변에서 보기에는 항상 위험한 것이다. 사회는 안정을 추구하기에 이런 사랑의 불안정적인 위험성을 항상 경계해왔다. 그렇기에 인류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 사랑의 안정을 위한 결혼이란 제도를 두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사랑의 위험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제도적으로 서로를 구속시킴으로서 사랑의 안정적 보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가족은 국가를 지탱하는 최소 단위이면서 국가의 최대 후원자이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구성한다. 즉 사회는 결혼을 권장함으로서 사랑의 불안정을 사회의 안정으로 바꾸고, 후원자들로 바꾼다. 일타 쌍피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국가구조를 지탱하는 최소단위의 이익집단 '가족'을 형성함으로서 개인과 사회의 안정을 동시에 충족하게 된다.
사랑, 결혼, 가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적 가치를 배워간다. 욕망, 소유, 책임, 관계, 의무, 신뢰.... 등등 이런 감정적 가치들은 인류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에 이르러 '사랑-결혼-가족'의 공식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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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04 23:40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여경갤러거 10/07/05 00:26 X
제게 영어는 문자가 아닌 그림입니다. 엄살이 아닌 진짜 그렇습니다. 원서는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역시 번역이 어렵게 만든 원인이였군요.... 어쨌든 마지막 한글자까지 읽고 덮었습니다. ㅋ
식탁 10/07/05 00:36 R X
대, 대단하십니다! 마지막 한 글자까지 모두 읽으셨다니! 전 1/10쯤에서 포기했거든요! 켁... ㅠㅜ
여경갤러거 10/07/05 00:46 X
1/10도 이해 못했는 걸요. ㅋㅋㅋ 비슷하네요.
나그네 10/07/08 09:16 R X
읽고 갑니다.
여경갤러거 10/07/08 11:37 X
부끄럽게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전체에 반도 안되서 아직 제가 쓰고 싶은 의견과는 많이 다릅니다. 조금씩 더 전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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