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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Green_design | 10/07/26 00:22
정글 콜론
디자인정글 편집부, 디자인 정글 (2010년 7월)
글: 윤여경






바른 소리 _ 디자인을 잘 한다는 것?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유행에 따라 스타일이 다르다. 이 틀 안에서는 ‘좋은 디자인’은 최신 디자인 잡지에서 제시하는 세련된 그림에 그친다. 잡지의 멋진 디자인만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한다면 디자인을 너무 협소한 개념에 가두는 셈이다. 좀더 포괄적으로 ‘좋은 디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잘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잘하는 것’, 이것 이상의 ‘좋은 디자인’이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디자인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이 글의 명제이다.

인디언 아이들
어느 목요일 아침, 윤호섭 선생님과 조그만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은 어느 심포지엄의 발제 의뢰를 받고 발표내용에 골몰하고 계셨다. 심포지엄 주제는 ‘행복한 학교’였다. 발표의 시작은 미국의 한 학교에 전학 온 '인디언 아이들' 이야기다.
미국에서 인디언 아이들 몇이 전학을 왔다. 마침 시험을 보는 날이라 교사는 아이들에게 책상위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험을 치려는데 전학 온 인디언 아이들의 이상한 행동에 교사는 놀란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책상을 모아서 동그랗게 마주보고 앉아 있던 것이다. 인디언 아이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교사는 이유를 물었다.
“시험을 보려는데 왜 그렇게 앉았니?”
인디언 아이들이 대답한다.
“저희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서 해결하라고 배웠습니다.”
충격을 받았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로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인디언 아이들’ 이야기는 지금까지 학교에 기대하던 막연한 생각들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얼마 전까지 현실사회의 많은 문제가 학교교육에 있다고 여겼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교육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접한 지금은 ‘학교교육 내용’이 아닌 ‘학교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여겨진다.
학교는 성적에 따라 개인별로 등급을 나눈다. 1등은 늘 칭찬받고 꼴찌는 늘 핀잔만 받는다. 성적은 교실에서만이 아닌 가정까지 이어진다. 늘 엄마 친구 아들과 경쟁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학생들은 늘 경쟁 속에 놓여있다. 학교는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사회를 배우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학교는 이 사회를 경쟁사회라고 가설을 세우고 경쟁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12년의 꽃다운 학창시절은 이런 쇠뇌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정작 현실사회의 삶은 학교와 다르다. 일상의 삶을 가만히 보면 의외로 학교에서처럼 늘 경쟁하지 않는다. 직장 혹은 주변에서 일하는 과정을 한번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약간의 갈등이 있더라도 매일매일 경쟁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경쟁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한다. 일이 잘되면 같이 즐거워하고, 잘 안되면 서로 감싸고 위안해 준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매일 경쟁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디자이너는 더욱 그렇다. 일의 특성상 디자이너는 혼자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을 의뢰받고 같이 고민한다. 시안이 맘에 안 들면 의견을 교환하고 수정해 나간다. 갈등이 생기면 타협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서로를 배려한다. 다른 회사 혹은 팀과 경쟁을 하는 경우라도 대부분의 시간은 동료들끼리 머리를 맞댄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머리를 맞대는 인디언 아이들의 태도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 사회의 어른들의 태도와 아주 유사하다.


생존경쟁과 상호부조
다윈은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진화해야 하며 생존경쟁은 진화의 추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종은 더 진화된 것이고 생존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의 가설이 되었다.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사회이다.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서점에는 자기 개발서가 즐비하고, 미디어는 영웅과 패배자를 동시에 다루며 우리에게 경쟁에서 승리해 영웅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늘 경쟁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생활 속에서는 서로 의지하고 돕는 상호부조적인 측면이 강하다. 아나키즘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던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보면 현재 지구상의 대부분 동물들은 생존경쟁보다는 상호부조적인 측면이 훨씬 강하다고 말한다. 크로포트킨은 다윈의 생존경쟁을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윈이 말한 경쟁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닌 주변과 더 잘 적응하기 위한 존재적 투쟁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공존을 위한 경쟁이다. 잘 진화된 생물종이라도 멸종된 사례가 많으며, 서로 강하게 의지하는 종만이 결국 살아남는 다고 강조한다. 인류도 이런 상호부조적인 측면이 강했다.
크로포트킨은 고대에는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장 가난한 사람을 도울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이런 룰이 강하게 적용되었다. 그렇기에 굶어 죽은 사람은 없었다. 현재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 중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윤리, 도덕은 누가 만들고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원시시대부터 인류가 공존하기 위한 상호부조의 습성이 몸에 배였던 것이다.
이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혈연, 학연, 지연에 대한 입장을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인류는 거의 6단계를 거치면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뉴욕의 어떤 사람이 6단계를 거치면 아프리카 부족의 누군가를 포함해 지구상은 어떤 사람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인류는 엄청나게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혈연, 학연, 지연은 우리 사이를 더욱 끈끈히 연결해주는 고리이다.
현대는 교통의 발전으로 공간과 언어, 국가와 민족을 넘어 무척 가까워졌다. 게다가 인터넷의 급성장과 트위터 등 온라인 소통이 전방위적으로 발전하면서 인류는 더욱 가깝게 연결 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이 모두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생존경쟁이란 단어가 끼어들 틈이 있겠는가.
인류의 위대한 성인들의 사상과 말씀들은 ‘행복한 공존’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인류의 스승들을 존경하면서도 그분들의 말씀을 현실과 다른 이상으로만 여긴다. 위대한 가르침을 인용하고 지식으로서만 언급할 뿐 그들이 제시하는 길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디자인과 디자이너
최근 디자인은 정의가 불가능하다. 전문적인 영역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디자인이 거론된다. 산업에서는 경쟁력의 수단으로, 사회에서는 창조적 시스템으로, 개인의 미적취향을 대변하기도 한다. 나아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디자인을 언급하기도 한다. 누구든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 공감한다.
디자이너는 어떤가?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을 강조하지만 그곳에 디자이너는 없다. 디자인의 의미적 성장에 따른 과실을 디자이너들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노동의 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디자인의 의미가 확장될수록 디자이너들은 점점 디자인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국은 압축성장을 통해 산업디자인이 육성되었고, 산업의 첨병으로서 디자이너의 여건은 훨씬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대기업 디자인실의 위상과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했고 어떤 디자이너는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어떤 디자이너는 억대 연봉을 받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디자이너의 여건은 좋은 듯하지만 대부분 디자이너들의 노동은 여전히 고되고, 근무여건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디자이너의 직업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세상에 알려진 스타디자이너들은 영웅대접을 받는다. 미디어는 몇몇 디자이너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미디어가 집중한 디자이너는 영웅이 된다. 조금 식상해지면 미디어는 제2의 영웅을 찾는다. 미디어가 추대한 영웅디자이너가 곧 이시대의 디자인을 대변한다. 이 사회는 그 영웅을 통해 디자이너를 인식한다.
이런 미디어의 접근은 일반적이다. 역사와 미디어는 영웅주의적 접근을 좋아한다. 영웅을 만들어 놓고 그들처럼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영웅은 그 상황이 만들어주는 것인데 주변 상황보다는 영웅의 모험심과 성공기만이 주목될 뿐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영웅을 통해 디자이너를 인식하듯이 예비디자이너들 또한 그 영웅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꿈꾼다.
과거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을 ‘불행한(unfortunate)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현대는 그런 사람을 ‘패배자(loser)'라고 말한다. 알랭드 보통의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모임이 동창회라고 말한다. 동창회는 같이 공부했고 같은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서로를 더욱 의식하게 된다. 동창회에서는 가장 성공한 한 사람을 뺀 나머지는 모두 패배자가 된다. 동창회의 승자는 성적순이 아니다. 유독 동창회에서는 친구의 성공이 기쁘지 않다. 알랭드 보통은 동창회는 절대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모든 것을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쟁으로 보면 우리 삶과 노동은 정말 참담해 진다. 성공하지 못한 자, 영웅이 못된 디자이너는 그냥 패배자일 뿐이다.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 근무여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성공한 자와 패배자만 있을 뿐이다.


디자이너들의 양극화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디자인 현장에서 디자이너는 역시 패배자이다. 현실에서 디자이너는 자존감의 문제가 절실하다.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이 사회는 디자이너를 ‘기술’ ‘이미지’ ‘컴퓨터’라는 한계에 가두기 때문이다. 결코 디자이너에게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디자이너의 생각은 조형과 표현에 한정된다. 심지어 컴퓨터를 배우면 디자인쯤은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디자인 방향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디자이너는 그냥 표현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디자이너는 표현을 하는 사람이다.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일의 기획 단계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기획에 관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사회는 디자이너에게 한정된 역할을 부여하고 그 안에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밀어 넣고 생존경쟁을 붙인다. 성공한 이는 영웅이 되고 실패한 이는 패배자가 된다.
영웅이 된 디자이너는 상으로 기획을 할 수 있는 자격과 근본적인 방향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이것을 디자이너들에게 보여줌으로서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영웅이 될 것을 강요한다. 경쟁에서 오는 디자인, 이에 따른 디자이너는 이런 현실에 갇힐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 공모전을 하거나 해외경험, 인턴 등 온갖 스팩을 쌓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경쟁은 더욱 심화된다. 이런 식의 생존경쟁은 이 상태를 지속시킬 뿐이다. 생존경쟁이 아닌 ‘디자이너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앞으로 ‘디자이너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심각하게 괴리된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이 시급하다.


개인의 성공에서 모두의 성공으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교와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또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이 글은 이 사회에는 전혀 경쟁이 없고, 경쟁을 하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균형을 찾자는 것이다.
우선, 디자이너들은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을 너무 몰라준다고 불평만 늘어놓을 뿐, 왜 그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따져 묻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모든 공부가 끝났다고 여긴다.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잃어 버렸다. 본래 진짜 공부는 현실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공부는 시험을 보는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닌 현명한 삶을 위한 지혜를 쌓는 것이다.
또, 우리 사회는 너무 경쟁만을 의식한다. 하지만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주변에 경쟁자가 있는가? 옆에 일하는 동료가 경쟁자인가? 친구가 경쟁자인가? 사용자가 경쟁자인가? 같이 일하는 편집자, 엔지니어 등 디자인에 관련하여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라. 그들이 과연 경쟁자인가? 경쟁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관련 업종의 종사자들, 얼굴도 모르는 거리의 사람들이 경쟁자인가? 물론 어떤 상황에 있어서는 경쟁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위에 나열한 모든 사람들을 막연하게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실 속에서 이들은 경쟁자가 아닌 나의 동료다. 친구이자 선배이자 후배이다. 서로 비슷한 길을,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단지 우리는 이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도록 강요받았을 뿐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긴다는 생각보다는 같이 한다는 생각으로, 개인의 성공보다는 모두의 성공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태도를 바꿔야 한다.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작업, 이것은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가 꿈꾸던 예술가의 세상이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또 디자인교육을 촉발시킨 ‘바우하우스’는 귀족미술과 민중공예의 화해를 모색하며 예술의 민주화와 생활화를 꿈꾸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이 탄생되었다. 디자인의 이상은 영웅이 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안정된 직장을 갖는 개인의 꿈이 아닌 좋은 세상을 만드는 모두를 위한 꿈이었다.
디자인의 이상을 따른다면 디자이너로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닌 같이 일하는 즐거움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존감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디자이너의 성공은 생존경쟁에 의한 개인의 성공이 아닌 상호부조를 통한 모두의 성공이어야 한다.



다시 학교 이야기로 돌아오면 지금 우리의 학교는 친구를 의식하고, 친구를 의심한다. 이기기 위해 몰래 공부하고 성적이 앞서기 위해 노력한다. 인격보다는 성적으로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성적이 좋은 학생은 친구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선생님보다 친구들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사회에서는 경쟁자 보다는 동료들과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교에서 경쟁의 과정을 거쳤고 미디어가 강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경쟁으로 도배된 세상이 전혀 아니다. 실제로는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되는 세상이다. 사람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실력보다는 인격이 훨씬 더 많은 것을 결정하고 우대받는 세상이다. 디자이너들은 이런 현실에서 다시 디자인에 대한 공부, 사회에 대한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 일하는 자세와 태도를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먼저 다가서면 상대는 마음을 연다. 주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 대한 비평을 고마워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서슴없이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디자이너가 먼저 다가서면 이 사회는 디자이너에게 마음을 열 것이다. 상대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다가서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디자이너 집단 이전에 디자이너로서의 개인의 실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시장에서 많이 팔기만을 고민하기보다 이 시대에 진정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앞장서서 고민해야 한다. 사회가 고민하는 것도 같이 공유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 노력해야 한다.
일을 위해서도 이미지보다 논리를 강화하고 내용에 맞는 스타일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타 분야와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디자인을 둘러싼 세상’을 알려는 노력은 디자이너가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인디언 아이들처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 이 사회에서 디자이너가 어떻게 자리매김 될지는 아직 모른다. 미래 디자이너들의 현실은 현재 디자이너들의 몫이다. 지금 당장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 글은 ‘디자인을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명제로 시작되었다. 필자는 방법적인 문제는 단 한글자도 거론하지 않았다. 방법은 2차적인 문제이다. 디자이너의 태도만을 강조했다. 디자이너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 이것이 당장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곧 디자인을 진정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월리엄모리스의 소설 <에코토피아 뉴스_박홍규 번역>의 마지막 문장을 이 글의 마지막 문장으로 인용한다.


“그래, 정말 그렇다! 내가 본 대로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꿈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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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대학교 특강 (2010. 6. 16), <정글 콜론>에 기재 (2010.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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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인 10/07/26 22:44 R X
당연한 듯 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것도 같아요. 혼자서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미덕으로 여긴 교육방식에 익숙해져있는 저로서는... ^^
여경갤러거 10/07/27 00:58 X
네 그럼요.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일정부분 자신을 버리는 것이니까요. ^^
최근에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경쟁으로 가고 있습니다. 집안이 얼마나 받쳐주냐에 따라 경쟁도 우의를 차지하는 세상입니다. 교육양극화가 점차 심해집니다.
그렇다보니까 혼자 해결하기 보다는 학원이나 주변에 의지하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제가 심각해져 자연스레 제가 주장하는 바른소리처럼 되었네요. 서로 의지하라는... 하핫
하지만 전... 의지하라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마음을 열라는 주장입니다. 혼자서 잘해도 혼자서만 잘하지 말고 주변과 나누고, 주변과 소통해서 더 잘하자는 그런.... 혜인씨도 자연스레 주변과 소통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도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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