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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 _ 2011년 새해 인사
Life | 11/01/23 15:16
디자인읽기에서 새해인사를 하자는 메일을 받고 어떤 식으로 2010년을 회상하고 어떤 방향으로 2011년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보신각 종소리 듣고 방송에서 각종 시상식을 보는 것으로 한해를 보내기 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생각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해 인사가 조금은 늦은 감이 있네요.



나는 없다
몇 년전, (수능)윤리 동영상을 보다가 지금까지의 제 자아 인식에 혁명적인 전환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는 제 생각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편이었습니다. 대화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하는 생각들은 모두 내 생각이고 내 판단이라 여겼습니다. 이 동영상은 이런 저의 기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그것은 불교에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불교에서 존재라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존재는 '관계의 합'이라는 내용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내가 집에 혼자 앉아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앉은 의자, 내 눈앞에 보이는 TV, 내 옷, 내 몸, 내가 있는 집, 옆집, 옆집 사람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 나를 생각해주는 것들... 등등 이런 것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기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다른 것’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지금 제가 쓰는 글과 생각도 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관계들에 의해 제가 생각되어지는 것이지요. 읽었던 책들, 만났던 사람들, 디자인읽기의 메일, 컴퓨터 등등이 지금 이 글을 쓰게 하는 것입니다. 책을 보면서, 대화를 하면서 하는 생각들도 책과 상대방에 의해 생각을 강요당하는 것이라고 봐야지요. 어쨌든 ‘나’라는 존재가 관계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때론 책을 보면서 내용과 관계없는 공상을 하게 됩니다. 책을 보면 자신이 지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인식되어 따분한 책 내용이 이해안가거나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가끔씩 책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는 지적공상을 하게 됩니다. 책 내용과 관련이 있든 없든 어쨌든 책에 의해 저는 공상(생각)을 강요당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간단한 법칙은 제 뒤통수를 강타했습니다. 그때부터 ‘존재’보다 ‘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관계’에 중심을 둔다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하더군요. 늘 상대를 의식해야 하고, 제 멋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상당히 피곤합니다. 어쨌든 저는 이런 ‘인식의 전환’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저는 '공감의 시대_제레미 리프킨'을 읽었습니다. 책이 두껍고 '공감'을 논리화 시키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관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어 읽기가 더뎠습니다. 더딘 만큼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서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공감'이라는 단어가 '존재' 보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각종 사상에서 관계를 조명하는 내용들을 확인하면서 수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그린’을 중심으로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린’에 대한 고민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최근 ‘그린’의 기반이 되는 키워드로 '서로 돕는 마음'을 뽑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서로 돕는 마음’의 토대는 바로 '공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프킨은 '공감'은 곧 '관계'에서 나오고 '관계'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즉, 모든 것은 '자아의 인식'에서 시작되고, '관계-공감-상호부조'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관계가 있다
몇 년전 불교의 관계적 입장에 뒤통수 한방 맞고, 최근 '공감의 시대'를 읽으면서 저는 2010년을 보내고 2011년을 맞이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관계-공감'에 대한 수많은 사상가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했던 고민의 흔적들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론과 실험을 통해 형성된 ‘공감’이란 단어가 이미 교육이나 사회참여, 경제활동 등을 통해 우리 삶에 깊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 관련 윤리동영상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을 스스로 인식한 것이 아닌 이미 우리 사회가 '관계'를 고민하는 '장'이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시대를 사는 제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셈이지요.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면서 이런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연결되더군요. ‘디자인’은 혼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닌 일을 의뢰받고, 또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만들어 가는 일이라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제가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 것도 이런 고민의 산물입니다. 디자이너들이 신봉하는 창의력도 하늘에서 디자이너에게 준 축복이 아닌, 함께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옛날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가 창의성이어서 무엇보다 창의적인 활동에 참여할 때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디자인의 아버지 ‘윌리엄 모리스’도 창의적인 노동활동을 통해 행복을 찾고 유토피아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서 '미술공예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창의적인 활동과 생각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줍니다. 나의 창의성을 다른 이에게 알림으로서 스스로 자존감을 느끼는 계기도 됩니다. 그러나 창의성은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함께 있고, 함께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루마니아의 정신과 의사 ‘야코프 모레노’는 공감적 참여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을 생각을 풀어놓음으로서 자신의 창의성에 책임을 가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책임감은 '창의적 기능'을 촉발시키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가 발명한 치료 방법이 '역할 바꾸기 연극'입니다. 연극을 통해 또 연기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공감하고 관객들도 자신을 그들에게 투영함으로서 또 다른 공감을 하게 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관용의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즉,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신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해결을 위해 창의력이 발휘되는 것이지요.
‘공감의 시대’는 인류가 ‘공감’를 형성시키기에 앞서 ‘자아’ 그리고 ‘관계’를 인식하는 긴 과정을 겪었다고 역설합니다. 수 만년 동안 우리는 ‘존재’와 ‘관계’의 갈등 과정을 지나왔습니다. 개인주의도 이런 과정의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자들은 나(개인)의 권리를 주장했을 뿐 타인이 또 하나의 나(개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인류는 자아를 인식했고 서로를 인정함으로서 관계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개인+관계’의 변증법을 통해 ‘공감’이란 단어를 발명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근거를 눈치 챘습니다. 그리고 이 법칙은 인간이라는 생물 종을 넘어 지구위의 모든 생물 종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관계가 사랑으로...
제 스승이자 멘토이신 윤호섭 선생님은 2011년 올해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하시더군요. '톨스토이의 마지막 생애'에서 톨스토이 사상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표현하더군요. LG그룹은 벌써 십년째 광고에서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엘지를 사랑하는 표현이 아닌 엘지가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참 우리에게 어떤 전기적 충격을 주는 단어입니다. 또 상황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다가오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앞서 제가 긍정적으로 나열한 키워드들은 모두 '사랑'이란 단어로 대변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 이만큼 쉽지만 어려운 단어도 흔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사랑’ 때문에 상처를 많이도 받았습니다. 그만큼 주변에 준 상처도 많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마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주변을 지나간 사람들 가슴속에 상처를 새겨 넣었을지도 모릅니다.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짠해 집니다. 그러면서 제 존재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오스카’가 표절문제로 인터넷에서 비난을 받습니다. 자신의 표절한 것도 아닌데 네티즌들이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뉘우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후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를 하면서 도와준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스카는 자신을 일부를 버림으로서 많은 것을 훈훈하게 얻게 됩니다.


2011년. 저는 새로운 관계를 실천해 나가려 합니다. 새로운 관계, ‘사랑’은 새 친구를 사귀고 앞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만남을 거울삼아 자신을 다시 인식하는 과정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모든 관계들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 고민을 시작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눈높이를 위로, 앞으로 향하기보다는 아래로 옆을 향해 아래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저의 문제를 알아가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스스로를 인식해서 앞으로 무언가를 실천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디자인을 하면서도 이런 저의 마음이 투영되어 제 자신을 믿기 보다는 주변과 상황을 더 믿고 저를 버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내가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함께 디자인하는 장’을 만들 수 있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삼겠습니다.
혹, 저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말로 2011년을 시작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글은 디자인읽기에 쓴 새해인사 글입니다. http://www.designersread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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