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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역할'이 세상을 바꾼다
Life | 11/02/20 16:46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리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마태 복음 6:19)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18)




위의 성경의 말씀에서 처럼 유태교, 탈무드, 기독교의 초기 이념은 '반소유'였다.
이 이념의 일관적 착취의 대상이었던 노예들에게 일종의 해방적 지침이었으며
그들의 삶의 비관과 현세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청량제였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듯 기독교는 현세에서의 고통이 내세의 행복이 된다는 희망이었으며,
천당과 지옥을 통해 죽음의 두려움을 해소시킬수 있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시키는 수단이었다.
유태교, 기독교는 당시 사람들이 소유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 부와 권력을 우상이라 지칭하고
우상을 파괴함으로서 무소유를 강조했고 모두가 함께 소유할수 있거나
또 모두가 소유하지 못할 수 있는
하나의 신, 하나님으로 귀결시킴으로서 '소유의 우상'을 파괴시켰다.
이로서 현세의 모든 사람들은 지금 얻을 수 없는 내세의 삶을 꿈꾸며
자신이 소유한 것이 덧없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믿음이든 성당(교회)의 평등한 의자, 평등한 예술과 윤리를 공유함으로서 오는 안정감이든
인류가 지금의 상황으로 오는 버팀목이자 긍정적 변화의 동인이었다.


종교는 평등을 지향함으로서 나눔의 주체적 역할을 했다.
성당(교회)안에서는 모두가 얄팍한 현세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해 공존하였으며
내세의 평온을 위해 현세의 선(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성당(교회) 안에서 보편적 윤리를 실천함으로서 사회적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고,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성당(교회)의 사제들은 이런 상황에서 일종의 재판관 역할을 하거나 방향타 역할을 하였다.
계급이 확연한 고대, 중세 사회에서 사제는 불균형한 사회구조의 불안함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사회의 안정을 꾀할수 있었기에 모든 계층에 인정을 받았다.


성당(교회)는 신(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그들이 착복한 부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거둬들인 것들을 좀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다.
이것은 당시 사회구조 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유일하게 성당(교회)만이 실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런 역할로 인해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끌어낼수 있었다.
중세에 이르러 이런 구조는 더욱 확고해졌고 성당(교회)는 훨씬 더 이런 역할을 수행할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사제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절대적 윤리를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부의 분배와 소유에 있어 초월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많은 사제들을 온갖 부패와 비리로 얼룩지게 만듦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성당(교회)의 역할에 의심을 가지게 되었고 종교개혁에 이르게 된다.
종교개혁으로 성당(교회)의 권력이 분산되고
'나눔'의 역할은 근대에 이르러 국가에 바톤을 넘겼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선출된 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세금(십일조)를 받아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나누는 구조로서 성당(교회)의 구조를 이어받았다.


현대에 이르러 많은 종교들이 '나눔의 역할'을 나누어 담당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도 일종의 '종교'다)
하늘이었던 성당(교회)에 사람들이 자신의 것들을 기부해 선을 실천하고
이를 좀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는 역할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단지 지금은 좀더 투명해진 정부라는 형태적 변화와 정신적 변화가 있을뿐
유태교, 기독교의 본래의 취지와 구조는 퇴색되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이다.
나눔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제' 그리고 '공무원'이다.
이들은 절대 윤리적 존재로서 '나눔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작은 공동체에서 어르신 혹은 족장이 공평하게 나누는 고대 사회에 비해
훨씬 더 커진 공동체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또한 더 세밀해진 계급구조와 전문구조는 교묘하게 '나눔'을 포장하여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울 수 있는 온갖 헛점을 내제하고 있다.
즉, 문제는 이 사회가 지향하는 윤리, 그 윤리적 가치이다.
여전히 사회는 '나눔'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치지만
복잡해진 이익구조에서 '경쟁' '시장권력' '성장적 진보'의 가치가 급부상되면서
이런 가치들이 '나눔'과 '사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논리가 되고 있다.

앞서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고 유태교와 기독교의 초기 이념과 실천을 대략적으로 기술하면서
'나눔'과 '사랑'은 소유의 개념, 이기심의 개념을 깨고 나온 근본적 개념이라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엉뚱하게도 대립적 가치였던,
'부를 위한 경쟁' '권력' '성장' 등이 자신이 '나눔과 사랑'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휴머니스트 마르크스(사회주의의 마르크스가 아닌)를 비롯해
많은 사상가들이 이를 논리적으로 막으려 애썼지만 힘에 부쳤다.

지금의 자본주의적 구조가 낳은 '변종 나눔, 사랑'은 변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구조는 지난 '혁명적 뒤집음'으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혁명'은 실패로 끝났음이 입증되었다.
우리 삶의 위기, 즉 지구의 위기가 과연 이런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동인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분명, '나눔의 역할'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가 자신의 구조를 바꾸는 결정적 동인이 바로 이 '나눔'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집트의 민주화를 보면서 나는 이들의 배고픔이 자신들의 상황을 바꾸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오바마의 의료개혁, 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우리 사회의 '복지논쟁'도
'나눔의 역할'을 향한 우리 사회의 필연적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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