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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3일 _해당되는 글 2건
11/05/13   사사로운 디자인사
11/05/13   삼포세대


사사로운 디자인사
Design | 11/05/13 16:03
/남겨진 것 // 인간을 위한 디자인(빅터파파넥)


나는 디자이너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주변과의 관계와 경험을 통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변화한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디자인과 현장 디자인의 온도차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고 말했듯이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막연하고 순진했던 희망이 현실의 벽에 부딪쳐 ‘분노’로 뒤바뀌던 시기였다.
직장 3년차, ‘인간의 위한 디자인’을 수차례 탐욕스럽게 읽었다. 내 분노는 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읽고, 고뇌하고 또 읽으면서 그었던 밑줄, 그리고 책의 주장에 맞선 메모들은 당시 내 생각의 기록이자 추억이 되었다. 같은 문장에 몇 번씩 그어진 밑줄들은 시공간을 넘어 빅터파파넥에게 묻는 반복된 질문이었고, 그 옆에 휘갈린 메모들은 나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었다. 그의 주장과 내 현실의 ‘모순’과 ‘괴리’에서 오는 갈등의 흔적들이 책에 새겨졌다. 그 시절 난 빅터파파넥의 주장에 크게 동요했고, 존경했고, 저항했다.
가끔 난 이 책을 들춰본다. 책을 펼치고 내가 갈겨쓴 메모들을 읽는다. 기억을 더듬어 과거 치열했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책 속 밑줄과 메모의 흔적들은 그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시키는 통로가 된다. 감긴 눈을 비벼 뜨고 새로운 생각을 향해 나아가도록 독려한다. 매 순간 삶에 지쳐 잠들어가는 내 자신을 깨운다. 비록 과거의 생각이지만 새로움을 향한 나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이 책은 늘 내 책상 위에 놓여있다. 약 40년 전 빅터파파넥의 고뇌는 이렇게 나를 통과해 굴절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흐르고 있다.





/남길 것 // 경향신문


내 삶의 끝이 80이라면 나는 이제 인생의 중간쯤을 살고 있다.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가누어 다행히 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디자이너로서...
글을 의뢰받고 재밌는 다른 가능성들을 고민했지만 현재 나의 본질이 경향신문인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논문 쓸 때 신문을 주제로 삼고 싶지 않아 버둥거렸지만 결국 신문이 주제가 되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의 정체성에 또 무릎을 꿇는다.
20대의 끝을 잡고 들어온 ‘경향신문’은 한국 언론의 상징성을 넘어 나에게 존재이유를 주었다. 지금까지 그 틀 안에서 봉사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나의 영향은 극히 미미하겠지만 타이포그래픽을 고민하고, 레이아웃 고민하고, 정보의 소통을 고민한 흔적들이 경향신문 구석구석에 담겼다.
‘디자이너 자신이 아닌 독자(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빅터파파넥의 디자인세계관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나를 통해 경향신문에 영향을 주었다. 새로운 제호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제호를 바꾸지 않고 기존 제호를 조금씩 세련되게 다듬었다.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의 가치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필름을 줄이기 위해 컬러 사용을 자제하고 지나친 CMYK 조합을 줄였다. 가독성을 위해 텍스트의 크기, 글자(단어)간격, 글줄간격을 조정하였다. 단 간격을 줄이고 지면 속 수많은 요소들을 덜어내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도록 노력했다. 같은 공간에 기사를 더 넣어 독자에게 더 많은 기사를 제공하고, 기사의 증가로 인한 지면증가를 억제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나의 디자인 마인드는 고스란히 경향신문에 담겼다.
앞으로 내가 이 공간에 있는 한 나의 디자인과 경향신문의 디자인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 의해 변화된 경향신문은 또 누군가에게 새로운 숙제로 남겨지겠지...





/변하지 않는 것 // 컵(Cup) 디자인


‘진짜 개(犬)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서양철학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시작은 플라톤이다.
그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개는 진짜 개가 아닌 개의 그림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짜 개는 머리 속, 이성(이데아)에 있다고 했다. 깜깜한 동굴에 있는 진짜 개가 이성의 빛에 비춰져 진돗개, 삽살개 등 다양한 형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진짜 개는 머릿속에 있고, 현실의 개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플라톤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이성과 본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컵’이 존재한다. 지금 내 옆에 ‘컵’이 보이고, 순간적으로도 20개 남짓의 ‘컵’을 떠올릴 수 있다. 언 듯 보기에 그 ‘컵’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르게 생겼다. 하지만 본질적 형태를 가만히 보면 거의 똑같다. 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손잡이 형태에 비슷한 동그라미 크기를 가지고 있다. 가끔 디자인적 유희로서 ‘네모 컵’ ‘세모 컵’ 등을 보았지만 실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정수기 옆에 달린 ‘종이컵’ 정도? 하지만 이 ‘컵(종이)’은 순간을 위한 단순한 꼼수일 뿐 진짜 ‘컵’이라 말하기 힘들다.
‘컵’ 디자인은 표면적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표면이 감싸고 있는 빈 공간이 중요하다. 이것이 컵 디자인의 핵심이다. 이런 기막힌 공간설정과 형태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선사시대의 유적들을 보면서 분명 그 이전부터 컵은 이런 형태로 존재했으리라...
나는 앞서 언급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만을 쫒는 그의 사상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를 만들어 내었는가. 하지만 ‘컵’에 있어서 그의 본질적 접근은 거부할 수가 없다. 어쩌면 현실에 있는 다양한 ‘컵’들은 이데아 속, ‘진짜 컵’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이데아 속에 있는 본질적인 ‘진짜 컵’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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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콜론 2011년 4월_창간호 <사사로운 디자인사>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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